나들이
말과 글이 같이 가는 요즘 들어서는 말인사와 글인사의 차이가 별로 없다. 사람과 경우에 따라 갖가지 인사말을 가려 쓸 수는 있겠지만, 전날처럼 “기체후 일향 만강하옵신지요? 별래무양하신지요? 옥체 만안하시온지요? …”(氣體候 一向 萬康-, 別來無恙-, 玉體 萬安-) 식으로 편지를 써야 격식을 갖춘 것으로 여기는 이는 거의 없다. 굳이 격식을 따진다면, “안녕하십니까?” 정도로 갖추어 하는 말과 “안녕하세요! 안녕! …” 식으로 줄여서 말하거나 건성으로 하는 인사 차이 정도다.
며칠 전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넘으며 국민에게 한 인사말이 “잘 다녀오겠습니다”였다. 이 말은 집이나 동네를 나설 때 어른들한테 해도 두루 통할 정다운 인사말이다. 인민이 하늘이라지만 듣는이를 높여서 하는 대통령의 이 소박한 인사를 외면하는 이가 있었을까? 남북 정상이 만나 손을 맞잡고 주고받던 말 “반갑습니다!” 역시 보통 사람의 인사말과 다를 게 없다. 그들이 초면이 아니었으면 “반갑습니다!” 다음에 “오랜만입니다” 또는 “오랜만에 뵙습니다”란 말이 덧붙었을 터이다.
지구 반대쪽도 며칠이면 다녀올 수 있고, 전화나 인터넷이면 어디서나 초를 다퉈 말글이 오가니,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울고 불며 하직인사가 길어질 일이 없어졌고, 그리움·걱정 같은 마음도 말도 거추장스러워졌다. “하루 더 묵었다 가시지요”나 “며칠 더 노시다 가시지요”도 헤어지기 전에 하던 통상적인 인사말이지만, 요즘은 좀체 듣기 어려운 곡진한 인사가 된 성싶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공지 | ∥…………………………………………………………………… 목록 | 바람의종 | 2006.09.16 | 50751 |
공지 |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 바람의종 | 2007.02.18 | 197257 |
공지 |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 風磬 | 2006.09.09 | 212139 |
3150 | 아카시아 1, 2 | 風文 | 2020.05.31 | 1403 |
3149 | 살인 진드기 | 風文 | 2020.05.02 | 1404 |
3148 | 일타강사, ‘일’의 의미 | 風文 | 2022.09.04 | 1406 |
3147 | 외부인과 내부인 | 風文 | 2021.10.31 | 1410 |
3146 | 대화의 어려움, 칭찬하기 | 風文 | 2022.06.02 | 1412 |
3145 | 올가을 첫눈 / 김치 | 風文 | 2020.05.20 | 1417 |
3144 | '넓다'와 '밟다' | 風文 | 2023.12.06 | 1419 |
3143 | 왜 벌써 절망합니까 - 4. IMF, 막고 품어라, 내 인감 좀 빌려주게 | 風文 | 2022.02.01 | 1420 |
3142 |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 | 風文 | 2024.02.17 | 1420 |
3141 | 후텁지근한 | 風文 | 2023.11.15 | 1421 |
3140 | 방언의 힘 | 風文 | 2021.11.02 | 1422 |
3139 | 웃어른/ 윗집/ 위층 | 風文 | 2024.03.26 | 1424 |
3138 | 벌금 50위안 | 風文 | 2020.04.28 | 1425 |
3137 | 형용모순, 언어의 퇴보 | 風文 | 2022.07.14 | 1425 |
3136 | 비는 오는 게 맞나, 현타 | 風文 | 2022.08.02 | 1429 |
3135 | ‘시끄러워!’, 직연 | 風文 | 2022.10.25 | 1429 |
3134 | 국가 사전 폐기론, 고유한 일반명사 | 風文 | 2022.09.03 | 1430 |
3133 | 할 말과 못할 말 | 風文 | 2022.01.07 | 1437 |
3132 | 성인의 세계 | 風文 | 2022.05.10 | 1439 |
3131 | ‘개덥다’고? | 風文 | 2023.11.24 | 1440 |
3130 | 웰다잉 -> 품위사 | 風文 | 2023.09.02 | 1442 |
3129 | 콩글리시 | 風文 | 2022.05.18 | 144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