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3.04.13 10:42

'김'의 예언

조회 수 894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김'의 예언

말은 시간과 닿아 있다. 경험과 기억이 쌓이기도 하고 오지 않은 미래를 그려 보게도 한다. 정신적 뼈와 살이 되는 말은 육체에 버금간다. 만져지는 말.

우리 딸은 2000년에 태어났다. 미인가 대안학교를 나온 그는 준채식주의자로 살고 있다. 매 순간 행복을 유예하지 않고, 사회가 미리 짜놓은 경쟁의 허들 경기에 불참하고 있다. 아비를 따라 합기도(아이키도) 수련을 하며 틈틈이 노래를 지어 부른다. 한동안 스파게티집 주방에서 종일 설거지 알바를 하더니 몇달 전부터는 채식요리(비건) 식당에 들어가서 고단한 노동자의 삶을 시작했다.

요즘 그는 틈나는 대로 운다. ‘김’ 때문이다. 얇고 까무잡잡한 ‘김’. 올해 봄이나 여름부터 후쿠시마 오염수를 바다에 쏟아붓는다는 소식과 겹쳐 ‘김’이란 말을 뱉을 때마다, 김이 눈앞에 보일 때마다, 그의 머릿속엔 파국적 상황이 연상되나 보다. 다시 먹지 못할 김. 어디 김뿐이랴. 오염수는 늦어도 4~5년 뒤엔 제주 밤바다에 도달한다고 한다. 국경을 모르는 물고기들은 그 전에 피폭될 테고(이미 봄비는 내렸다).

일본 시민사회와 교류하고 있는 옆방 선생이 전하기를, 일본 지인들한테서 ‘안전한’ 한국산 다시마를 보내달라는 연락이 온다고 한다. 일본의 어느 아침 밥상에서는 ‘다시마’를 앞에 두고 우는 이들이 있나 보다.

원전 마피아들은 오염수 방류의 파국적 미래에 눈을 감고 입을 다물고 있다. 아니, 무조건 ‘안전하다’고 떠든다. 생태에 대한 책임감을 찾을 수 없는 엘리트들보다 우리 딸의 감각이 더 믿음직스럽다. 늦지 않게 종말론적 체념의 감각을 익혀야겠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40862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87263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02378
3344 X-mas 바람의종 2011.12.26 13353
3343 X세대 바람의종 2008.02.20 8346
3342 [re] 시치미를 떼다 file 바람의종 2010.11.17 12938
3341 ~ ㄴ걸 / ~ ㄹ 걸 바람의종 2008.12.11 10161
3340 ~ 시키다 바람의종 2008.12.10 9290
3339 ~ 화(化) 바람의종 2009.09.06 6798
3338 ~ㄴ 바 바람의종 2010.11.02 11079
3337 ~같이 바람의종 2010.05.10 9457
3336 ~겠다, ~것다 바람의종 2010.07.10 10499
3335 ~과 다름 아니다 바람의종 2008.11.01 8946
3334 ~까지, ~조차, ~마저 바람의종 2009.03.23 11444
3333 ~노, ~나 바람의종 2010.09.05 8851
3332 ~는가 알아보다 바람의종 2009.09.27 8251
3331 ~다 라고 말했다 바람의종 2010.03.15 12074
3330 ~다오, ~주라 바람의종 2011.12.05 8223
3329 ~답다, ~스럽다 바람의종 2010.11.21 9393
3328 ~대, ~데 바람의종 2011.12.04 12906
3327 ~던가, ~든가 바람의종 2008.07.12 11856
3326 ~데 반해 / ~데 비해 바람의종 2010.02.28 17338
3325 ~도 불구하고 바람의종 2012.10.02 11380
3324 ~되겠, ~되세 바람의종 2009.03.30 6503
3323 ~든 / ~던 바람의종 2011.11.27 10810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56 Next
/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