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3.01.16 08:08

‘통일’의 반대말

조회 수 2058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통일’의 반대말

‘낮’의 반대는 ‘밤’, ‘살다’의 반대는 ‘죽다’. 반대말은 어떤 상태의 양쪽 끄트머리로 우리의 시선을 잡아당긴다. 그 사이에 있는 우여곡절은 놓치게 하지. ‘깨끗하다-더럽다’ ‘따뜻하다-차갑다’ ‘다정하다-무정하다’처럼 사회문화적인 평가가 담긴 말은 한쪽으로 마음이 쏠리게 하지.

'통일’의 반대말은 뭘까? ‘분단’이나 ‘분열’쯤 될 듯. 분단, 분열은 ‘쪼개지고 갈라졌다’는 부정적 감정을, 통일은 ‘하나되고 일치한다’는 긍정적 감정을 일으킨다. ‘우리의 소원’이기도 하니, 거역할 수 없는 지상명령이다. 통일만 된다면, 긴장과 대립은 사라지고 상처는 치유되며 온 세상에 일치와 단결의 함성이 드높아질 거라는 유토피아적 희망을 품게 된다.

그러다 보니, 분단, 분열 쪽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일상생활에서도 일사불란한 통일을 좋아한다. 식당에서 ‘짜장면으로 통일!’을 외칠 때 뿌듯한 일체감을 느낀다. 통일은 엄연히 존재하는 차이를 가려야 성립한다. 그런 점에서 획일화의 위험을 안고 있다.

반대편에 있는 ‘분단’, ‘분열’을 보자. 요즘 말로 바꾸면 ‘자유’나 ‘자치’라 하겠다. 각각의 자유가, 서로의 다름이 당당히 추구되고 성취되어야 한다. 그런 가운데 ‘그래도 함께할 구석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긍정적인 답이 떠올라야 ‘같은 말과 피’라는 민족적·유전자적 차원보다 진일보한 통일이 가능하리라. 우리에게 더 많은 권력 분산, 더 많은 지방색, 더 많은 자치가 필요하다. 통일과 자유, 자치를 절묘하게 결합시키는 게 시대적 과제다. 반대말의 사이를 헤엄치며, 반대말을 뒤섞음으로써.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64280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210855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25602
3326 물타기 어휘, 개념 경쟁 風文 2022.06.26 1500
3325 산막이 옛길 風文 2023.11.09 1500
3324 영어의 힘 風文 2022.05.12 1501
3323 외국어 차용 風文 2022.05.06 1503
3322 교열의 힘, 말과 시대상 風文 2022.07.11 1503
3321 비계획적 방출, 주접 댓글 風文 2022.09.08 1504
3320 어떤 반성문 風文 2023.12.20 1505
3319 거짓말과 개소리, 혼잣말의 비밀 風文 2022.11.30 1507
3318 말의 이중성, 하나 마나 한 말 風文 2022.07.25 1508
3317 비대칭적 반말, 가짜 정보 風文 2022.06.07 1509
3316 왜 벌써 절망합니까 - 4. 이제 '본전생각' 좀 버립시다 風文 2022.02.06 1509
3315 벌금 50위안 風文 2020.04.28 1510
3314 뒤죽박죽, 말썽꾼, 턱스크 風文 2022.08.23 1511
3313 군색한, 궁색한 風文 2023.11.21 1511
3312 그림과 말, 어이, 택배! 風文 2022.09.16 1514
3311 아카시아 1, 2 風文 2020.05.31 1515
3310 국가 사전을 다시?(2,3) 주인장 2022.10.21 1515
3309 사수 / 십이십이 風文 2020.05.17 1517
3308 막장 발언, 연변의 인사말 風文 2022.05.25 1518
3307 아줌마들 風文 2022.01.30 1519
3306 왠지/웬일, 어떻게/어떡해 風文 2023.06.30 1519
3305 정당의 이름 風文 2022.01.26 1520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