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3.01.15 16:22

등용문

조회 수 18032 추천 수 1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등용문


“‘집채만 한 파도’와 ‘집채를 덮을 만한 파도’의 차이점, 구분되세요?” 국립국어원이 새해 들어 펴낸 <쉼표, 마침표.>에 실은 글의 제목이다. 조사와 보조사는 앞말에 붙여 쓰고 의존명사는 띄어 쓴다는 걸 설명한 글이다. 앞 문장의 ‘만’은 보조사, 뒤 문장의 ‘만’은 의존명사이니 띄어쓰기를 달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말 띄어쓰기 구별은 이래저래 쉽지 않은 일이다. 작은아버지의 집은 ‘작은집’으로 붙여 쓰지만, 규모가 작은 집은 ‘작은 집’으로 띄어 써야 하니 말이다.

글쓰기에 띄어쓰기가 있다면 말하기에는 끊어 읽기가 있다. 끊어 읽기는 현행 어문규정에 정리되어 있는 게 없으니 띄어쓰기보다 더 까다롭다. 같은 기사나 원고로 뉴스를 내보내고 낭독을 해도 사람에 따라 끊어 읽기가 달라지는 현상은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끊어 읽으려면 어절보다 뜻에 따른 ‘의미절’을 따져야 한다. 지구 온난화 방지 협약의 하나인 ‘교토의정서’를 ‘교토의 정서[교토에 정서]’로 잘못 말한 방송 진행자가 톡톡히 망신을 당한 것도 문장의 뜻을 몰랐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방송을 비롯한 입말의 세상에서는 띄어쓰기보다 중요한 게 끊어 읽기이다.

빅토르 위고의 작품인 <레미제라블>의 원제목은 ‘Les Miserables’로 ‘불쌍한(비천한) 사람들’이니 뜻에 따라 끊어 읽으면 ‘레-미제라블’이다. ‘레미-제라블’이 아닌 것이다. 오페라에서 주역을 맡은 여주인공 ‘프리마돈나’(prima donna)는 ‘제1의 여인’이란 뜻이니(브리태니커) ‘프리마-돈나’가 된다. 신라 화랑인 ‘기파랑’(耆婆郞)을 기린 향가는 ‘찬-기파랑-가’(讚---歌), 죽은 누이(亡妹)를 위한 향가는 ‘제-망매-가’(祭--歌)로 읽는 게 맞다. ‘잉어가 황허강 상류의 용문(龍門)을 오르면(登) 용이 된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등용문’은 그래서 ‘등-용문’으로 끊어야 제 뜻에 어울리는 것이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52235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98749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13758
3348 어떤 청탁, ‘공정’의 언어학 風文 2022.09.21 1170
3347 군색한, 궁색한 風文 2023.11.21 1170
3346 일고의 가치 風文 2022.01.07 1173
3345 날아다니는 돼지, 한글날 몽상 風文 2022.07.26 1177
3344 왜 벌써 절망합니까 - 4. 이제 '본전생각' 좀 버립시다 風文 2022.02.06 1181
3343 사람, 동물, 언어 / 언어와 인권 風文 2022.07.13 1184
3342 말과 상거래 風文 2022.05.20 1185
3341 인과와 편향, 같잖다 風文 2022.10.10 1185
3340 온실과 야생, 학교, 의미의 반사 風文 2022.09.01 1186
3339 고백하는 국가, 말하기의 순서 風文 2022.08.05 1187
3338 ‘내 부인’이 돼 달라고? 風文 2023.11.01 1189
3337 “이 와중에 참석해 주신 내외빈께” 風文 2023.12.30 1191
3336 내연녀와 동거인 風文 2023.04.19 1193
3335 동무 생각, 마실 외교 風文 2022.06.14 1194
3334 ‘짝퉁’ 시인 되기, ‘짝퉁’ 철학자 되기 風文 2022.07.16 1195
3333 모호하다 / 금쪽이 風文 2023.10.11 1197
3332 노동과 근로, 유행어와 신조어 風文 2022.07.12 1199
3331 24시 / 지지지난 風文 2020.05.16 1202
3330 연말용 상투어 風文 2022.01.25 1205
3329 외국어 차용 風文 2022.05.06 1205
3328 말의 세대 차 風文 2023.02.01 1206
3327 왜 벌써 절망합니까 - 벤처대부는 나의 소망 風文 2022.05.26 1207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