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08.12.08 02:16

퍼주기

조회 수 7011 추천 수 11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퍼주기

언어예절

“함지에 보리밥을 퍼 담고, 두레박으로 물을 퍼 올리며, 채독에서 쌀을 한 보시기 퍼 동냥을 준다”처럼 활용하여 ‘퍼-’로 쓰는 말에 ‘푸다’가 있다. 이에 ‘주다’를 합치고 뒷가지 ‘기’를 붙여 ‘퍼주기’를 만들어 쓴다.

몇 해 이 말의 폭발력은 대단했다. 2000년대 초부터 반북정서를 대변해, 햇볕·포용, 평화·번영 등 정부의 대북정책을 뭉뚱그려 비판하는 용어로 쓰였다. 말 자체가 주는 단순성과 적확성으로 정부의 대북정책을 꼬집고 무력화하는 데 큰 구실을 했다.

이 말을 부려쓰는 쪽에서는 애초 헤아림 같은 것은 버렸다. 인도적 지원과 경제협력 원조를 구별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싸잡은 것이다. 남북 관계를 깊이 생각하고 배려하는 이의 ‘말씀’은 아니란 말이다.

이후 ‘퍼주기’의 쓰임은 선거, 외교·통상, 단체교섭 등으로 그 영역이 넓어진다. 선심 공약, 선심 정책, 조공 외교, 선물 외교 …에서 ‘퍼주기’가 그 앞말을 대신했다. 이는 고정된 말뜻으로 굳어지지 않고 살아 있는 말로서 여러 언어 환경에서 적응한다는 뜻이겠다.

나눔·베풂·선심·보시보다 떳떳하고 좋은 게 뭐가 있겠는가. 보답을 바라지 않는다. 본디 대가를 받느냐 받지 않느냐와는 상관이 없다는 말이다. 굳이 따지자면 ‘상호주의’나 ‘주고받기’가 상대되는 말이 되겠지만, 최근 들어서는 ‘퍼주기’도 ‘주고받기’도 듣기가 어려워졌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61644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208246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23111
3194 한 두름, 한 손 風文 2024.01.02 1606
3193 인쇄된 기억, 하루아침에 風文 2022.08.12 1607
3192 말다듬기 위원회 / 불통 風文 2020.05.22 1608
3191 수능 국어영역 風文 2023.06.19 1608
3190 쌤, 일부러 틀린 말 風文 2022.07.01 1611
3189 일타강사, ‘일’의 의미 風文 2022.09.04 1614
3188 통속어 활용법 風文 2022.01.28 1623
3187 남과 북의 협력 風文 2022.04.28 1624
3186 '바치다'와 '받치다' file 風文 2023.01.04 1624
3185 한글의 역설, 말을 고치려면 風文 2022.08.19 1625
3184 주권자의 외침 風文 2022.01.13 1627
3183 보편적 호칭, 번역 정본 風文 2022.05.26 1628
3182 ‘맞다’와 ‘맞는다’, 이름 바꾸기 風文 2022.09.11 1632
3181 무술과 글쓰기, 아버지의 글쓰기 風文 2022.09.29 1633
3180 기림비 2 / 오른쪽 風文 2020.06.02 1636
3179 방언의 힘 風文 2021.11.02 1637
3178 드라이브 스루 風文 2023.12.05 1642
3177 “힘 빼”, 작은, 하찮은 風文 2022.10.26 1644
3176 식욕은 당기고, 얼굴은 땅기는 風文 2024.01.04 1646
3175 “자식들, 꽃들아, 미안하다, 보고 싶다, 사랑한다, 부디 잘 가라” 風文 2022.12.02 1647
3174 위탁모, 땅거미 風文 2020.05.07 1649
3173 질문들, 정재환님께 답함 風文 2022.09.14 1649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