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08.03.18 01:45

빌레와 바위

조회 수 7047 추천 수 4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빌레와 바위

제주의 땅이름 형태는 뭍과 다른 점이 많다. ‘빌레’는 제주말로 ‘너럭바위’를 뜻한다. 남제주 대정 지역의 ‘넙은빌레·빌레못·답단빌레’ 등은 너럭바위에서 나온 이름이다. 이 ‘빌레’의 표준형은 ‘별내’다. 별내는 비탈을 뜻하는 ‘별’에 ‘장소’ 또는 ‘물’을 뜻하는 ‘내’가 합쳐 된 말이다. 제주에서만 ‘빌레’가 나타나 낯선 땅이름처럼 보인다.

땅이름 변화에는 지역에 따른 말소리 차이가 큰 영향을 끼친다. 고개를 뜻하는 ‘모르’나 ‘머르’, 바다 쪽으로 길게 뻗어 나온 뭍을 뜻하는 ‘고지·코지’와 같은 말들도 받침이 없는 형태인데, 이는 제주말의 소리마디에 받침을 잘 안 쓰거나 유성음을 많이 쓰는 경향과도 관련이 있는 듯하다. 그렇기에 제주 방언에는 ‘르·앙·엉’으로 끝나는 명사가 많다. 또 뭍과 교류가 활발하지 못했던 탓에 이 지역 말에는 옛말이 많이 남아 있는 것도 특징이다.

비탈의 ‘별’과 낭떠러지의 ‘낭’이 합쳐져 ‘벼랑’을 이루듯, 비탈진 곳의 바위만을 별도로 ‘빌레’라고 부른 것은 땅이름의 지리적인 특성을 반영하는 셈이다. 제주에서 빌레와 바위는 유의어로 쓰이는데, 바위는 간혹 ‘방구·방귀’로 불리기도 한다. 바위가 많은 마을인 남원읍 신흥리는 ‘방구령’이라고 불렸다. 이 말은 생리현상인 방귀를 연상하게 하므로, 한자 표기에 거북 구를 쓰다가, 아예 신흥리라는 전혀 다른 이름으로 바꿨다. 마을 서남쪽에 앞빌레가 서 있는데도 생소한 땅이름이 만들어지는 원리를 보여준다.

허재영/건국대 강의교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53947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200531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15520
3194 되묻기도 답변? 風文 2022.02.11 1416
3193 인쇄된 기억, 하루아침에 風文 2022.08.12 1419
3192 ‘파바’와 ‘롯리’ 風文 2023.06.16 1422
3191 이름 짓기, ‘쌔우다’ 風文 2022.10.24 1424
3190 사수 / 십이십이 風文 2020.05.17 1425
3189 남과 북의 협력 風文 2022.04.28 1427
3188 삼디가 어때서 風文 2022.02.01 1428
3187 ‘이’와 ‘히’ 風文 2023.05.26 1431
3186 가족 호칭 혁신, 일본식 외래어 風文 2022.06.26 1432
3185 “힘 빼”, 작은, 하찮은 風文 2022.10.26 1432
3184 지슬 風文 2020.04.29 1433
3183 무술과 글쓰기, 아버지의 글쓰기 風文 2022.09.29 1434
3182 통속어 활용법 風文 2022.01.28 1435
3181 ‘나이’라는 숫자, 친정 언어 風文 2022.07.07 1435
3180 북한의 ‘한글날’ 風文 2024.01.06 1435
3179 공적인 말하기 風文 2021.12.01 1438
3178 영어 공용어화 風文 2022.05.12 1439
3177 1.25배속 듣기에 사라진 것들 風文 2023.04.18 1441
3176 사투리 쓰는 왕자 / 얽히고설키다 風文 2023.06.27 1443
3175 ‘폭팔’과 ‘망말’ 風文 2024.01.04 1443
3174 드라이브 스루 風文 2023.12.05 1444
3173 외부인과 내부인 風文 2021.10.31 1447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