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3.11.20 10:22

‘가오’와 ‘간지’

조회 수 1510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가오’와 ‘간지’

최근 베테랑 형사와 안하무인이며 후안무치인 재벌 3세의 대결을 그린 액션 영화를 봤다. 그런데 영화 한 장면에서 형사가 ‘가오’란 말을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써서 많은 관객을 웃겼다. ‘가오’는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에 들여와 쓰이기 시작한 말로, 일본어 ‘가오(かおㆍ顔)’에서 유래한다. 광복 이후 이 말을 ‘얼굴’ 또는 ‘체면’으로 순화해 쓰도록 했고, 그 결과 공적인 언어 상황에서는 더 이상 쓰이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사적인 언어 상황에서는 여전히 ‘가오’가 널리 쓰이고 있다. 주로 ‘가오(가) 서다’, ‘가오(를) 잡다’ 등의 형식으로 쓰인다. 이때의 ‘가오’는 ‘얼굴’ 또는 ‘체면’과 그 의미가 약간 다르다. 사람들 대부분은 이 말을 ‘허세’, ‘개폼’ 등의 의미에 더 가까운 비속어로 인식한다.

‘가오’처럼 사적인 언어 상황에서 널리 쓰이는 일본어로 ‘간지’를 하나 더 들 수 있다. ‘간지(かんじㆍ感じ)’ 또한 일제 강점기 때부터 쓰이기 시작한 일본어로, 광복 이후 ‘느낌’으로 순화해 쓰도록 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방송이나 젊은이들 사이에서 ‘간지 스타일’, ‘간지 아이템’ 등이나 ‘간지(가) 나다’의 형식으로 ‘간지’가 부활(?)하여 등으로 무분별하게 쓰이고 있다. ‘간지’가 ‘느낌’보다 더 그럴듯한 의미를 갖는 말로 인식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일제강점기 때부터 쓰이기 시작한 일본어 잔재의 대부분은 현재 거의 쓰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몇몇 일본어는 사적인 언어 상황에서 우리말로 둔갑하여 여전히 그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널리 쓰이다 보니 우리말보다 더 친숙하게 여겨질 때도 있다. 광복절을 맞아 일상적으로 쓰는 말 가운데 일본어 잔재가 남아 있는 건 아닌지 한번 돌아보면 좋겠다.

박용찬 대구대 국어교육과 조교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59948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206448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21360
3392 불교, 경계를 넘다, 동서남북 風文 2022.08.15 1247
3391 내색 風文 2023.11.24 1252
3390 왜 벌써 절망합니까 - 4. 선한 기업이 성공한다 風文 2021.10.31 1266
3389 부사, 문득 風文 2023.11.16 1267
3388 사과의 법칙, ‘5·18’이라는 말 風文 2022.08.16 1272
3387 편견의 어휘 風文 2021.09.15 1273
3386 여보세요? 風文 2023.12.22 1278
3385 영어 절대평가 風文 2022.05.17 1279
3384 왜 벌써 절망합니까 - 훼방만 말아 달라 風文 2022.05.23 1283
3383 댕댕이, 코로나는 여성? 風文 2022.10.07 1289
3382 말과 공감 능력 風文 2022.01.26 1294
3381 뒷담화 보도, 교각살우 風文 2022.06.27 1298
3380 댄싱 나인 시즌 스리 風文 2023.04.21 1300
3379 왜 벌써 절망합니까 - 4. 자네 복싱 좋아하나? 風文 2022.02.10 1302
3378 옹알이 風文 2021.09.03 1304
3377 고양이 살해, 최순실의 옥중수기 風文 2022.08.18 1306
3376 24시 / 지지지난 風文 2020.05.16 1309
3375 외국어 선택, 다언어 사회 風文 2022.05.16 1309
3374 언어와 인권 風文 2021.10.28 1310
3373 안녕히, ‘~고 말했다’ 風文 2022.10.11 1316
3372 올해엔 저지른다, ‘죄송하지만’ 風文 2022.08.04 1321
3371 어떤 청탁, ‘공정’의 언어학 風文 2022.09.21 1328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