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3.02.01 09:39

말의 세대 차

조회 수 112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말의 세대 차

말의 세대 차를 걱정하는 사람을 자주 만난다. ‘못 알아듣겠다.’ ‘이러다가 소통이 안 될까봐 걱정이다.’ ‘세대 차를 줄이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라고 말하기도 한다. 걱정도 팔자다. 노력하지 말라. 가끔은 뭘 하는 것보다 안 하는 게 나을 때가 있다. 세대 차를 줄이려는 노력은 허황되고 부질없다. 세대 차가 없는 말의 세계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노화 저지’(안티에이징)가 시대적 과제라지만, 가는 세월 그 누가 잡을 수가 있겠나.

기성세대는 버릇처럼 젊은이들의 말을 달가워하지 않지만, 줄임말이나 신조어가 젊은이들의 전유물이기만 한 건 아니다. 새로운 말은 세대를 불문하고 어디서든 만들어진다. 누가 쓰느냐에 따라 평가를 달리할 뿐이다. 공식어나 격식체를 쓰는 공간에서도 줄임말이나 신조어를 빈번하게 쓴다. 그런데 정치에 무심한 사람에게는 ‘외통위, 법사위, 과기정통부, 윤핵관’이 생소할 수밖에 없다. 국가재정사업에 무심하면 ‘예타 면제’란 말을 모른다. 입시에 무심하면 ‘학종, 사배자, 지균’이 뭔지 모른다. 시골 농부는 ‘법카’를 모른다(알아 뭐 할꼬). 어떤 사람들에겐 못 알아듣는 말인데도, 아무도 문제 삼지 않는다. 이 공간을 차지한 사람들에게 친숙한 말이면 ‘모두가 쓰는 말’로 가정한다. 그 공간 밖에 있는 사람들의 말만 불온시한다. 편파적이다.

우리는 모든 장소와 시간에 존재할 수 없다. 말은 장소성을 갖는다. 장소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새로운 말을 만들어낸다. 장소성을 갖지 않는, 장소성이 표시되지 않는, 중립적인 척하는 언어가 더 의심스럽다. 차이를 줄이기보다 차이를 밀어붙이자.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46582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93083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08153
3326 영어의 힘 風文 2022.05.12 1075
3325 군색한, 궁색한 風文 2023.11.21 1075
3324 뒤치다꺼리 風文 2023.12.29 1075
3323 ‘선진화’의 길 風文 2021.10.15 1077
3322 동무 생각, 마실 외교 風文 2022.06.14 1078
3321 24시 / 지지지난 風文 2020.05.16 1079
3320 뒤죽박죽, 말썽꾼, 턱스크 風文 2022.08.23 1079
3319 '김'의 예언 風文 2023.04.13 1079
3318 피동형을 즐기라 風文 2023.11.11 1079
3317 날아다니는 돼지, 한글날 몽상 風文 2022.07.26 1087
3316 발음의 변화, 망언과 대응 風文 2022.02.24 1091
3315 말의 이중성, 하나 마나 한 말 風文 2022.07.25 1091
3314 모호하다 / 금쪽이 風文 2023.10.11 1091
3313 사저와 자택 風文 2022.01.30 1092
3312 말과 상거래 風文 2022.05.20 1092
3311 언어의 혁신 風文 2021.10.14 1093
3310 주어 없는 말 風文 2021.11.10 1094
3309 주시경, 대칭적 소통 風文 2022.06.29 1094
3308 말과 절제, 방향과 방위 風文 2022.07.06 1100
3307 외국어 차용 風文 2022.05.06 1101
3306 그림과 말, 어이, 택배! 風文 2022.09.16 1103
3305 거짓말과 개소리, 혼잣말의 비밀 風文 2022.11.30 1103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