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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와 ‘맞는다’

몇 주 전 원고에 “불문율이 언어의 본질에 맞다”고 했더니 신문엔 “맞는다”로 고쳐 실렸다. 넷플릭스 영화를 봐도 등장인물은 ‘맞다’라 하는데 자막엔 늘 ‘맞는다’로 나온다. ‘‘맞다’는 무조건 ‘맞는다’로 고쳐 쓰라’는 지침이 있는 게 분명하다.

하도 한결같아서 찾아보니, ‘맞다’는 동사이고 동사의 현재형에는 ‘-는-’을 붙여야 하므로 ‘맞는다’가 맞다(!)는 것. 하지만 ‘맞다’는 동사와 형용사를 넘나드는 존재다. 이름하여 ‘형용사적 동사’ 또는 ‘형용성 동사’. 왜 이런 이름이 달렸을까? 우리가 그렇게 쓰기 때문이다.

동사는 ‘먹어라, 먹자’처럼 명령이나 청유형이 가능하다. 안 그러면 형용사다. ‘맞다’는 ‘(이 옷이) 맞아라, 맞자’라고 안 쓴다. 감탄할 때 동사는 ‘먹는구나’처럼 ‘-는구나’를, 형용사는 ‘춥구나’처럼 ‘-구나’를 붙인다. ‘맞다’는 ‘맞는구나’로도 ‘맞구나’로도 쓴다. 형용사는 ‘와, 맛있다! 멋지다!’처럼 기본꼴로 감탄사처럼 쓸 수 있다. ‘맞다’도 비슷하다. 비 그친 날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맞다, 우산!’, 머리 아플 땐, ‘맞다, 게○○!’.

‘맞다’가 동사인지, 형용사인지를 따지려는 게 아니다. 이런 현상을 설명하는 방식이나 반응하는 모습이 문제다. 누군가 ‘이게 맞다’고 하면, 자기 입에 붙어 자연스럽게 쓰는 말을 너무 쉽게 부정하고 고친다. 이 일사불란함이 지루하다.

말은 늘 변한다. 전문가는 풍속의 감시자가 아니라, 변화를 받아 적고 설명하는 존재일 뿐이다. 고칠 건 사전이나 설명이지, 당신의 말이 아니다. 명령에 거역하라.



이름 바꾸기

내 이름은 웃긴다. 발음이 절지동물과 닮아 별명이 ‘왕지네’였다. 모르는 이에게 이름을 불러주면 열에 아홉 ‘진혜’나 ‘진회’로 적는다. “‘바다 해’ 자입니다”라거나 “해바라기 할 때 해 자입니다”, “‘ㅕㅣ’가 아니라 ‘ㅏㅣ’예요”라 해야 한다. 어감도 묵직하거나 톡 쏘는 맛이 없어서, 줏대도 없고 집요함도 모자란다. 이게 다 이름 탓이다!

그러니 이름을 바꾸어야 할까? 우리 사회는 걸핏하면 이름을 바꾸던데. 사람들 반응이 시들하고 전망이 안 보이고 시대에 뒤처진 느낌일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이름 바꾸기다. 회사명, 주소명, 건물명, 학과명, 가게명, 정당명, 정부 부처명. 불합리를 바로잡고 합리성과 혁신 의지를 듬뿍 담아! 한국 현대사는 간판 교체사이다.

이름 바꾸기는 연속성의 거부이자 과거와 단절하려는 몸부림이다. 하지만 대부분 근본적이지 않고 선택적이라는 게 문제다. 실패하고 부끄럽고 숨기고 싶은 과거만 지목될 뿐.

모든 이름에는 이름의 질감이 있다. 이름을 그대로 두면 부끄럽고 불합리하며 분했던 순간도 도망가지 못한다. 나는 그 질감이 좋다. 그 부끄러움과 불합리가 좋다. 우여곡절을 겪는 의미를 같은 이름 안에 쌓아 놓는 것. 의미는 시시때때로 변하는데, 이름마저 자주 바뀌면 어지럼증이 심해진다. 나는 문화라는 게 ‘이유는 잘 모르지만, 옛날부터 그렇게 써 왔어’라고 말하는 거라 생각한다. 단절은 세탁과 표백의 상큼함과 뽀송함을 줄지는 몰라도, 역사의 냄새와 질감을 회피하게도 만든다. 이름 바꾸기를 성과로 내세우는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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