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2.02.10 10:21

권력의 용어

조회 수 1330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권력의 용어

모든 분야의 전문가들은 그 나름의 전문용어들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비합법적인 영역에서조차도 전문용어 기능을 하는 말들이 있다. 그런 말들을 흔히 ‘은어’라고 한다.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음지의 전문용어라고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또다른 영역이 슬며시 모습을 드러낸다. ‘권력’이라는 영역이다.

권력은 합법 세계와 비합법 세계를 다 들여다보게 된다. 그러다보니 합법과 비합법 양쪽을 아우르는 용어나, 양쪽에 다리를 걸친 듯한 개념을 쓰기도 한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정치자금’이라는 용어가 있었다. 불법인 듯, 합법인 듯, 어떻든 권력이 필요한 돈이었다. ‘고위층’이란 말도 그게 누구인지 알 듯 모를 듯하다. 누구인지 너무 관심 갖지 말라는 용어라고도 할 수 있다.

또 신기한 권력의 용어가 하나 발견되었다. 이름하여 ‘특수활동비’다. 공금이긴 한데 굳이 그 용처를 밝히지 않아도 되는 신기한 돈이다. 언론이 이미 ‘쌈짓돈’ 혹은 ‘눈먼 돈’과 동의어라는 듯이 빈정대고 있으니 이미 그 정당성이 무너진 말이다. 또 ‘돈봉투’라는 말이 유의어처럼 쓰인다. ‘돈봉투’의 또다른 유의어는 ‘금일봉’이란 말이다. 대개 금일봉은 권력자가 은혜를 베풀듯이 주는 돈이고, 돈봉투는 힘없는 사람이 권력자에게 바치고 싶어하는 돈이거나 어슷비슷한 사람들끼리 나누어 갖는 돈인 것 같다.

권력이 음지와 양지를 모두 들여다볼 필요는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 활동의 정당성은 명백하게 해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공직에 있으면서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은 권력의 ‘사익’에 해당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흐릿하게 처리하면 결국 정당하던 권력마저 무너지게 마련 아닌가? 국정농단은 그리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다. 권력의 사사로운 일상생활 바로 곁에 있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59807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206290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21192
3172 “자식들, 꽃들아, 미안하다, 보고 싶다, 사랑한다, 부디 잘 가라” 風文 2022.12.02 1610
3171 공적인 말하기 風文 2021.12.01 1613
3170 1.25배속 듣기에 사라진 것들 風文 2023.04.18 1614
3169 사투리 쓰는 왕자 / 얽히고설키다 風文 2023.06.27 1614
3168 ‘이고세’와 ‘푸르지오’ 風文 2023.12.30 1614
3167 삼디가 어때서 風文 2022.02.01 1615
3166 질문들, 정재환님께 답함 風文 2022.09.14 1616
3165 방언의 힘 風文 2021.11.02 1618
3164 1도 없다, 황교안의 거짓말? 風文 2022.07.17 1618
3163 지식생산, 동의함 風文 2022.07.10 1619
3162 ‘나이’라는 숫자, 친정 언어 風文 2022.07.07 1621
3161 ‘부끄부끄’ ‘쓰담쓰담’ 風文 2023.06.02 1626
3160 오염된 소통 風文 2022.01.12 1628
3159 만인의 ‘씨’(2) / 하퀴벌레, 하퀴벌레…바퀴벌레만도 못한 혐오를 곱씹으며 風文 2022.11.18 1629
3158 ‘~스런’ 風文 2023.12.29 1629
3157 혁신의 의미, 말과 폭력 風文 2022.06.20 1630
3156 대화의 어려움, 칭찬하기 風文 2022.06.02 1633
3155 ‘파바’와 ‘롯리’ 風文 2023.06.16 1633
3154 정치의 유목화 風文 2022.01.29 1634
3153 왜 벌써 절망합니까 - 4. IMF, 막고 품어라, 내 인감 좀 빌려주게 風文 2022.02.01 1635
3152 기림비 2 / 오른쪽 風文 2020.06.02 1636
3151 웰다잉 -> 품위사 風文 2023.09.02 1636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