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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15 06:26

쇠를 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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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를 녹이다

세상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하다가도 “그까짓 것 아무리 떠들어 봐야 뭐하나? 공연히 입만 아프다”는 말로 이야기판을 마감하기 일쑤였다. 말해 봤자 아무런 반응이 없으면 자신이 대화의 상대조차 못 된 처지라는 것을 깨닫고 입을 다물게 된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신라 시대 이야기이다. 당시에 이름난 미인이었던 수로부인이 일행과 함께 동해안을 지나는데 돌연히 용이 나와 부인을 바닷속으로 채어갔다. 남편과 일행이 당황해할 때 지나가는 노인이 “예로부터 많은 사람의 입은 쇠를 녹인다고 했습니다. 바닷속의 용인들 어찌 여러 사람의 입을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백성을 모아 노래를 지어 부르면서 지팡이로 땅을 치면 마땅히 부인을 되찾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그래서 그대로 하니 용이 부인을 되돌려줬다고 한다.

여럿의 입’이 쇠를 녹인다.(중구삭금)고 하는 말은 주술적으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상징적으로는 매우 복잡한 사회적 함의를 품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외치고 고함치면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또 어찌 여럿의 입을 두려워하지 않겠냐는 말도 많은 사람들이 함께 외치면서 행사하는 힘의 위력을 무시해선 안 된다는 경고이다.

최근 여섯 주일에 걸쳐 우리 국민은 끈질기게 여럿의 목소리를 모아 거리에서 외쳤다. 그리고 무쇠처럼 단단해 보이던 권력을 일단 물러서게 만들었다. 여럿의 입이 얼마나 큰 힘을 낼 수 있는지를 직접 체험한 것이다. 지금까지 ‘여럿의 입'이라고 하면 그저 중구난방이라는 말로 평가절하되어 왔다. 이제는 대중의 목소리가 오히려 민주 정치의 기본 토대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다중의 말이 가진 힘을 체감한 귀중한 시기였다. 한데 모여 소리치면 누군들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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