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1.12.01 18:54

더(the) 한국말

조회 수 1496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더(the) 한국말

누구든지 한국말은 한국말다워야 한다는 주장에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그런데 한번 반대로 생각해 보자. 한국말이 외국어다우면 어떨까? 우리 언어를 더 멋있게 만드는 일일까 아니면 망가뜨리는 일일까? 현실에서는 한국말을 마치 외국어인 듯이, 혹은 외국어가 우연히 한국어처럼 들리는 듯한 말을 만들어 내고 있다.

1970년대 한국에서 처음 나온 와인의 이름은 ‘마주 앉았다’는 의미를 풍기는, 그러나 듣기에 따라 외국어처럼 들릴 수도 있는 이름을 붙였다. 당시 국세청에서 외국어로 지은 술 이름을 허용하지 않아서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외래어 상표명이 인기를 누리는 상품은 주로 화장품, 음식, 패션, 건강용품 분야에 속한다. 그래서 그런지 ‘나들이’라는 말을 풀어적은 형태, ‘보드랍게’를 변형시킨 이름, ‘참 좋은’을 연상시키는 이름들이 주로 미용과 관련하여 사용된다. 또 ‘아리따움’을 알파벳으로 표기하여 마치 라틴어인 듯이, 또 달리 보면 한국어인 듯이 지은 점포명도 있으며, 더 나아가 아파트 이름마저 한국어의 ‘푸르지요’인 듯이, 아니면 마치 이탈리아에서 온 말인 듯이 사용되기도 한다.

외국어식 위장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제는 영어의 정관사인 더(the)와 한국어의 비교급을 나타내는 부사인 ‘더’가 중첩된 듯한 표현들도 많아지고 있다. 어찌 보면 한국어의 부사 같고 또 달리 보면 영어의 정관사 같다. 영어의 ‘더(the)’는 명사의 앞에 붙고, 한국어의 ‘더’는 형용사 혹은 형용사적인 명사 앞에 붙게 되어 있다. 별개의 문법 구조를 섞어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표현이 상업적으로 얼마나 큰 이익을 가져오는지는 알 수 없다. 단지 이를 보고 자란 어린이들이 나중에 영어를 배울 때는 혹시 온갖 명사 앞에 무조건 정관사만 붙이려고 하지 않을까 걱정일 뿐이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61659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208262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23120
3128 ‘~스런’ 風文 2023.12.29 1726
3127 ‘시끄러워!’, 직연 風文 2022.10.25 1727
3126 지명의 의의 風文 2021.11.15 1729
3125 전설의 마녀, 찌라시 / 지라시 風文 2020.06.16 1731
3124 백열 / 풋닭곰 風文 2020.05.09 1732
3123 풀어쓰기, 오촌 아재 風文 2022.10.08 1733
3122 언어적 자해 風文 2022.02.06 1734
3121 멋지다 연진아, 멋지다 루카셴코 風文 2023.04.17 1736
3120 울타리 표현, 끝없는 말 風文 2022.09.23 1737
3119 질척거리다, 마약 김밥 風文 2022.12.01 1737
3118 '넓다'와 '밟다' 風文 2023.12.06 1740
3117 '마징가 Z'와 'DMZ' 風文 2023.11.25 1746
3116 되갚음 / 윤석열 風文 2020.05.19 1747
3115 비는 오는 게 맞나, 현타 風文 2022.08.02 1750
3114 ‘사흘’ 사태, 그래서 어쩌라고 風文 2022.08.21 1751
3113 납작하다, 국가 사전을 다시? 주인장 2022.10.20 1751
3112 ‘폭팔’과 ‘망말’ 風文 2024.01.04 1753
3111 한글의 약점, 가로쓰기 신문 風文 2022.06.24 1754
3110 -분, 카울 風文 2020.05.14 1755
3109 형용모순, 언어의 퇴보 風文 2022.07.14 1755
3108 ‘~면서’, 정치와 은유(1): 전쟁 風文 2022.10.12 1756
3107 하룻강아지 / 밥약 風文 2020.05.29 1757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