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08.02.05 12:50

이랑과 고랑

조회 수 7334 추천 수 3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이랑과 고랑

농사짓는 솜씨가 달라지고 농사마저 사라질 지경이 되니까 농사에 딸린 말도 더불어 달라지고 사라진다. 경운기·이앙기·트랙터·콤바인이 나오니까 극젱이(훌칭이)·쟁기·써레·곰배 …가 모두 꼬리를 감추고, 따라서 따비와 보습도 사라진 지 오래다. 아무리 그렇대도 사람 목숨의 바탕인 농사가 사라질 수 없는 노릇이라면 ‘이랑’과 ‘고랑’은 끝까지 남을 말이다. 하지만 이들마저 뜻이 헷갈려 국어사전까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밭농사는 반드시 고랑과 이랑을 만들어야 한다. 흙을 깊이 갈아엎어서 흙덩이를 잘게 부수고 고른 다음 고랑에서 파 올린 흙으로 이랑을 만들어 씨앗을 넣거나 모종을 옮겨서 가꾼다. 이랑은 높아서 물기가 차이지 않아 남새나 곡식을 키우는 터전이 되지만, 고랑은 제 흙을 이랑에 넘겨주고 스스로 낮아져 이랑의 남새와 곡식을 돌보는 사람의 발에 밟히기나 한다. 그러나 세상 이치는 “이랑이 고랑 되고, 고랑이 이랑 된다”는 속담처럼 때가 차면 뒤집혀 공평해지기 마련이고, 이랑과 고랑은 언제나 정답게 짝을 이루어 ‘사래’라 불리며 살아남았다. 그런데 왕조가 무너지고 일제 침략으로 농사까지 바뀌면서 ‘두둑’이 판을 치며 이랑을 밀어냈다. 두둑은 고랑과 가지런히 짝하지 않고 제 홀로 몸집을 불려 자리를 널찍이 차지하고 남새나 곡식을 여러 줄씩 키우도록 탈바꿈한 이랑이다. 이렇게 두둑이 이랑을 밀어내고 고랑과 짝을 지으니까 국어사전들이 두둑과 고랑을 싸잡은 것이 이랑이라면서 어처구니없는 망발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김수업/우리말교육대학원장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51599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98108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13064
3260 공부 바람의종 2007.06.03 7154
3259 구축함 바람의종 2007.06.04 9045
3258 국면 바람의종 2007.06.04 9203
3257 국수 바람의종 2007.06.05 7416
3256 굴지 바람의종 2007.06.05 6919
3255 귀감 바람의종 2007.06.06 8609
3254 금일봉 바람의종 2007.06.06 10064
3253 기린아 바람의종 2007.06.07 9121
3252 기별 바람의종 2007.06.07 8663
3251 기우 바람의종 2007.06.08 10422
3250 기지촌 바람의종 2007.06.08 6790
3249 나락 바람의종 2007.06.09 6669
3248 낙점 바람의종 2007.06.09 7961
3247 낭패 바람의종 2007.06.10 6867
3246 노골적 바람의종 2007.06.10 6999
3245 노동1호 바람의종 2007.06.11 8464
3244 노비 바람의종 2007.06.11 6821
3243 노파심 바람의종 2007.06.12 8168
3242 농성 바람의종 2007.06.12 6860
3241 다반사 바람의종 2007.06.20 7734
3240 단말마 바람의종 2007.06.20 7165
3239 답습 바람의종 2007.06.24 9853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