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08.01.29 15:46

날래다와 빠르다

조회 수 7545 추천 수 2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날래다와 빠르다

그림씨(형용사) 낱말은 본디 느낌을 드러내는 것이라 뜻을 두부모 자르듯이 가려내기가 어렵다. 게다가 이런 그림씨 낱말은 뜻 덩이로 이루어진 한자말이 잡아먹을 수가 없어서 푸짐하게 살아남아 있는데, 우리는 지난 세기 백 년 동안 소용돌이치는 세상을 살아오면서 선조들이 물려준 이런 토박이말을 제대로 건사하지 못했다. 그래서 뒤죽박죽 헷갈려 쓰는 바람에 힘센 낱말이 힘 여린 낱말을 밀어내고 혼자 판을 치게 되고, 그러니 고요히 저만의 뜻과 느낌을 지니고 살아가던 낱말들이 터전을 빼앗기고 적잖이 밀려났다. ‘날래다’와 ‘이르다’도 육이오 즈음부터 ‘빠르다’에 밀려서 갈수록 설 자리를 잃어가는 낱말들이다. 우리네 정신의 삶터가 그만큼 비좁아지는 것이다.

‘빠르다’는 그냥 시간의 흐름에 쓰는 말이고, ‘날래다’는 움직임에 걸리는 시간의 흐름에 쓰는 말이고, ‘이르다’는 잣대를 그어놓고 시간의 흐름에 쓰는 말이다. ‘빠르다’는 ‘더디다’와 마주 짝을 이루어 시간이 흐르는 속도를 가려서 쓰고, ‘날래다’는 ‘굼뜨다’와 마주 짝을 이루어 움직임에 걸리는 시간의 짧기와 길기를 가려서 쓰고, ‘이르다’는 ‘늦다’와 마주 짝을 이루어 잣대로 그어놓은 시간의 흐름에서 먼저인가 다음인가를 가려서 썼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빠르다’가 움직임에 걸리는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는 ‘날래다’의 터전으로 슬슬 밀고 들어오면서 ‘느리다’를 짝으로 삼아 ‘굼뜨다’까지 밀어내며 들어왔다. 요즘은 이들 짝이 ‘이르다’와 ‘늦다’의 터전으로도 밀고 들어온다.

김수업/우리말교육대학원장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61762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208427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23242
3282 사저와 자택 風文 2022.01.30 1488
3281 아카시아 1, 2 風文 2020.05.31 1491
3280 사수 / 십이십이 風文 2020.05.17 1492
3279 난민과 탈북자 風文 2021.10.28 1492
3278 벌금 50위안 風文 2020.04.28 1493
3277 외래어의 된소리 風文 2022.01.28 1493
3276 인종 구분 風文 2022.05.09 1493
3275 공공언어의 주인, 언어학자는 빠져! 風文 2022.07.27 1494
3274 이단, 공교롭다 風文 2022.08.07 1494
3273 말의 바깥, 말의 아나키즘 風文 2022.08.28 1495
3272 더(the) 한국말 風文 2021.12.01 1496
3271 ‘내 부인’이 돼 달라고? 風文 2023.11.01 1497
3270 주시경, 대칭적 소통 風文 2022.06.29 1507
3269 3인칭은 없다, 문자와 일본정신 風文 2022.07.21 1507
3268 남친과 남사친 風文 2023.02.13 1507
3267 김 여사 風文 2023.05.31 1507
3266 지슬 風文 2020.04.29 1508
3265 왜 벌써 절망합니까 - 벤처대부는 나의 소망 風文 2022.05.26 1509
3264 언어적 적폐 風文 2022.02.08 1511
3263 장녀, 외딸, 고명딸 風文 2023.12.21 1512
3262 본정통(本町通) 風文 2023.11.14 1514
3261 구경꾼의 말 風文 2022.12.19 1515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