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과 물맛
땅이름은 특정 지역의 환경을 반영하여 만들어질 때가 많다. 그 가운데는 술과 관련된 것들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경북에 가면 ‘예천’(醴泉)이란 곳이 있다. 예천의 ‘예’(醴)는 단술을 뜻한다. 예천은 본디 신라의 수주현(水酒縣)이었는데, 경덕왕 때 예천군으로 고쳤다. ‘수주현’이나 ‘예천’은 둘 다 ‘술’과 관련이 있다. 땅이름에 ‘술’이 들어가는 까닭은 무엇일까? 오랫동안 땅이름을 연구했던 김윤학 교수는 이러한 원리를 ‘유연성’에서 찾는다. 유연성을 고려한다면, 술과 관련된 땅이름은 대체로 물과 깊은 관련을 맺는다.
예천이라는 땅이름에 단술을 뜻하는 한자 ‘예’를 쓴 것은 이 지역의 물맛이 단술 맛과 같다는 뜻이었다. 흥미로운 점은〈산해경〉에 나오는 ‘봉황 설화’다. 이를 보면 발해 북쪽 땅 한곳에 붉은 동굴이 뚫린 산이 있는데, 그 산 꼭대기에는 금과 옥이 많고 붉은 물이 흘러나오는 곳이 있다. 이 물은 남쪽 발해로 흘러드는데 그곳에 큰 새가 있으니, 모양은 닭과 같고 오색찬란한 새로, 그 이름을 봉황이라 한다고 했다. “봉황은 신령스러운 새이니 수컷을 봉이라 하고, 암컷을 황이라 한다. 봉황의 성격은 오동나무가 아니면 앉지 않으며,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는다”고 하였다.
〈시경〉기록에, 봉황은 예천의 물이 아니면 마시지 않는다 하였다. 술맛 같은 예천의 물. 그러나 오늘날은 예천만이 아니라 전국 어디를 가든 봉황이 마시는 물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은 일이 됐다.
허재영/건국대 강의교수·국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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