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1392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고유한 일반명사

유일하다. 하나밖에 없다. 무한한 우주를 뒤지고 억만 겁의 시간을 오르내려 보아도 언제나 하나밖에 없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하나밖에 없을 때 우리는 거기에 고유명사를 붙인다. 사람 이름을 비롯하여 산 이름, 강 이름, 별 이름, 동네 이름, 상호가 그렇다. 관심과 애정이 가는 대상에 ‘이름’을 붙인다. 애정이 있어 이름을 붙이지만 이름은 더 깊은 애정을 다시 부른다(집착과 함께).

잘 알려진 고유명사는 다른 대상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데 재활용되기도 한다. 이강인은 한국의 ‘메시’이고 독재자는 ‘히틀러’이며 과학에 재능을 보이는 아이는 꼬마 ‘아인슈타인’이다. 예쁜 산을 두고 한국의 ‘알프스’라 소개하는 안내문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고유명사의 확장이다.

반대편에 일반명사가 있다. 여러 사물을 하나의 이름으로 묶는다. 태백산이든 수유리 화단이든 앞집 계단이든 피어나면 모두 ‘꽃’이다. 절집이든 고물상 앞마당이든 산 너머든 멍멍 짖는 녀석은 ‘개’다. 낱낱이 가진 차이는 사라지고 그저 하나의 공통성으로 묶인다.

그런데 일반명사라 하더라도 각 사람에게 고유명사인 게 있다. 아무리 이 세상에 같은 이름의 대상이 널려 있어도 그 사람에게는 하나밖에 없다. ‘엄마’라는 말을 떠올려 보라. 세상 ‘모든 엄마들’이 아니라 ‘우리 엄마’만 떠오른다. 물건도 곁에 오래 두고 지내면 나에게 유일무이해진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관계의 그물로 맺어진 인연과 체험에 따라 일반명사가 점점 고유화되는 걸지도 모른다. ‘고유한 일반명사’가 이 세상에서 사라질 때 그 이름은 그리움으로 바뀐다.



국가 사전 폐기론

‘국가 사전’: 민간이 아닌 정부가 펴낸 사전. 1999년 국립국어원에서 발행한 <표준국어대사전>(표준사전)을 말함(비슷한말: 관변 사전, 관제 사전).

사전 뒤에는 사전 만든 사람이 몰래 숨어 있다. 중립적 사전은 없다. 사전 편찬자의 권한은 막강하다. 어떤 단어를 선택하고 배제할지, 그 단어를 어떻게 정의할지를 결정한다. 그 권한을 국가가 독점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고 위험하다.

국가 사전을 없애자고 하면, 사전 출판 현실을 모른다고 타박하거나 말글살이에 대혼란이 올 거라고 겁을 낸다. 기왕 만들어 놓은 걸 왜 없애냐고 한다. 시민의 힘으로 권력을 교체할 만큼 사회적 역량을 갖춘 한국 사회는 유독 사전 앞에만 서면 작아진다. 국가란 본질적으로 명령의 집합체이자 일방적 힘을 행사하는 장치이다. 국가 사전은 그 자체로 명령과 통제의 언어이다. ‘다른 해석’을 허락하지 않는다. 다양성은 사라졌고 사람들은 이제 <표준사전>만 검색한다.

사전은 언어를 바라보는 다양한 철학과 기준들로 서로 경합해야 한다. ‘복수’의 사전이 계속 나와야 한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문화 예술 정책의 기조는 사전 영역에도 고스란히 적용되어야 한다. 사전을 낼 만한 역량을 갖춘 출판사나 대학, 전문가 집단 몇 곳에 10년짜리 예산 지원을 해보라. 창고에 묵혀 두었던 사전 원고를 다시 꺼내고 사람들이 자주 쓰는 말들을 찾아나서 각자의 색깔과 향기에 맞는 사전을 만들 것이다. 그러다 보면 엄청나게 다양한 일본어 사전 못지않은 사전들을 보게 될 것이다. 국가 사전을 폐기하라.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48640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95077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10049
3282 개념의 차이, 문화어 風文 2022.06.13 1180
3281 애정하다, 예쁜 말은 없다 風文 2022.07.28 1180
3280 생각보다, 효녀 노릇 風文 2022.09.02 1181
3279 ‘이고세’와 ‘푸르지오’ 風文 2023.12.30 1185
3278 세계어 배우기 風文 2022.05.11 1186
3277 영어 열등감, 몸에 닿는 단위 風文 2022.04.27 1187
3276 아줌마들 風文 2022.01.30 1188
3275 야민정음 風文 2022.01.21 1189
3274 말의 미혹 風文 2021.10.30 1190
3273 법과 도덕 風文 2022.01.25 1192
3272 외래어의 된소리 風文 2022.01.28 1192
3271 우방과 동맹, 손주 風文 2022.07.05 1192
3270 옹알이 風文 2021.09.03 1193
3269 ‘~스런’ 風文 2023.12.29 1194
3268 몸으로 재다, 윙크와 무시 風文 2022.11.09 1195
3267 조의금 봉투 風文 2023.11.15 1198
3266 저리다 / 절이다 風文 2023.11.15 1199
3265 왠지/웬일, 어떻게/어떡해 風文 2023.06.30 1200
3264 왕의 화병 風文 2023.11.09 1200
3263 '밖에'의 띄어쓰기 風文 2023.11.22 1201
3262 과잉 수정 風文 2022.05.23 1202
3261 국가 사전을 다시?(2,3) 주인장 2022.10.21 1202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