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2.05.11 14:40

간절기

조회 수 12104 추천 수 5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간절기

지난 봄날의 하루가 떠오른다. 옷장을 열어 본 아내가 배시시 웃으며 ‘입을 옷이 없다’고 했던 날이다. 딱히 답할 말을 찾지 못해 멋쩍게 웃는 나와 달리 중학생 딸은 그 뜻 알겠다는 듯 까르르 웃었다. 이 얘기를 들은 갓 스물의 여학생들은 ‘여자는 철이 바뀔 때마다 입을 옷이 없는 게 맞다’며 깔깔 웃는다. 남자들은 모르는 ‘여성 공감’의 힘이다. 한마디로 ‘입을 옷이 없다’는 뜻은 ‘입을만한 옷’이 없다는 뜻이니, 곧 ‘(맘에 드는) 새 옷이 없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봄의 문턱을 넘어서나 싶더니 초여름 날씨가 이어진다. 환절기가 짧아진 것이다. 환절기(換節期)는 뜻 그대로 ‘철이 바뀌는 시기’이다. 철이 바뀔 즈음에는 큰 일교차로 면역력이 떨어지기에 건강상품이 인기를 끈다. 옷장 열어보며 한숨 쉬는 여성들을 위한 패션상품도 쏟아져 나온다. ‘환절기 건강’, ‘간절기 패션’처럼 같은 때를 두고 표현이 달라지기도 한다. 인터넷 검색 결과를 보면 쓰임의 차이가 또렷해진다. ‘환절기 건강’(약 400만건)-‘간절기 건강’(약 70만건), ‘환절기 패션’(약 100만건)-‘간절기 패션’(약 330만건)이다.(구글 검색) ‘간절기 패션’(약 1880건), ‘환절기 패션’(약 880건)처럼 뉴스 검색 결과도 다르지 않다.(네이버 검색)

1990년대에 등장한 ‘간절기’는 2000년 국어원 신어자료집에 오르면서 세력을 얻는다. 뜻풀이는 ‘한 계절이 끝나고 다른 계절이 올 무렵의 그 사이 기간’이니 ‘환절기’와 다르지 않다. ‘간절기’는 일본어 ‘셋키노 아이다’(節氣の間, 절기의 사이)의 ‘간’을 앞에 앉혀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절기(節氣)는 ‘계절 바뀜’과 무관한 것이니 ‘간절기’를 우리말답게 쓴다면 ‘주로 패션업계에서’처럼 쓰임을 명시하고 한자(間節期)도 밝혀야 한다. 수다한 동의어와 유의어는 말글살이를 풍요롭게 하기도 하지만 혼란을 불러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44380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90831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06001
3148 북한의 국화는 목란꽃 바람의종 2010.01.18 14027
3147 진안주 바람의종 2010.10.30 14021
3146 짬이 나다 바람의종 2008.01.30 14018
3145 늘상, 노상, 천상, 천생 바람의종 2009.11.03 14015
3144 올곧다 바람의종 2007.03.03 14002
3143 제비초리 바람의종 2007.03.23 13992
3142 자문을 구하다? 바람의종 2010.05.05 13987
3141 여보 바람의종 2010.07.05 13963
3140 금세, 금새 / 여태, 입때 / 늘상, 항상 바람의종 2008.12.15 13959
3139 도매급으로 넘기다 바람의종 2010.04.24 13951
3138 우려먹다(울궈먹다) 바람의종 2007.03.03 13941
3137 이녁 바람의종 2007.03.15 13928
3136 응큼, 엉큼, 앙큼 바람의종 2010.01.14 13902
3135 쌍거풀, 쌍가풀, 쌍꺼풀, 쌍까풀 바람의종 2012.07.27 13899
3134 참고와 참조 바람의종 2010.08.03 13889
3133 학부모 / 학부형 바람의종 2010.09.29 13862
3132 늑장, 늦장/터뜨리다, 터트리다/가뭄, 가물 바람의종 2008.12.27 13836
3131 안정화시키다 바람의종 2012.04.23 13834
3130 입추의 여지가 없다 바람의종 2008.01.28 13833
3129 슬라이딩 도어 바람의종 2011.01.30 13825
3128 쪼달리다, 쪼들리다 / 바둥바둥, 바동바동 바람의종 2012.09.27 13825
3127 앙갚음, 안갚음 바람의종 2011.11.27 13821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