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3.12.20 06:10

어떤 반성문

조회 수 970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어떤 반성문

사는 게 후회의 연속이다. 말을 해서 후회, 말을 안 해서 후회, 말을 잘못해서 후회. 집에서는 말이 없어 문제, 밖에서는 말이 많아 문제.

나는 천성이 얄팍하여 친한 사람과는 허튼소리나 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가 탈이 난다. 며칠 전에도 후배에게 도 넘는 말장난을 치다가 탈이 났다. 아차 싶어 사과했지만, 헤어질 때까지 굳은 얼굴을 풀지 않았다. 상대방을 살피지 않고, 땅콩 까먹듯이 장난질을 계속하니 사달이 나지.

올해 가장 후회되는 말실수. 지난여름, 어느 교육청 초대로 글쓰기 연수를 했다. 한 교사가 ‘약한 사람들이 할 일은 기억, 연대, 말하기’라고 말한 이유를 물었다. 거기다 대고 나는 ‘뻘소리’를 했다. “교실에서 제일 힘센 사람은 선생이잖아요. 뭘 하라고도 할 수 있고, 하지 말라고도 할 수 있는…. 그러니 잘 견딥시다.”

잘못된 시스템 속에서 개인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는 거였는데, 마음을 고쳐먹으라는 소리나 하다니. 그러곤 얼마 안 있어 교사들의 비극적 선택 소식이 이어졌다. 아찔했다. 교사들은 죽음을 감행할 정도로 깊은 좌절감과 무기력증에 시달리고 있었다(교사인 처제도 학생의 해코지가 두려워 얼마 전 노모를 모시고 이사를 갔다). 폐허로 변한 교실, 붕괴된 교육체계를 응시하기 위해서라도 말을 더 나누며 연대의 길을 찾아보자고 해야 했는데…. 그 말이 들어 있는 글을 다시 보니 ‘죽음은 개인이 당면해야 할 일이지만 개인에게 모든 걸 맡기지 않는 것, 죽음에 대해 말함으로써 죽음을 뛰어넘는 것’이라고 씨불이고 있었다.

말에서 비롯한 잘못은 자기감정이 과잉되거나 자기 확신이 강해서 생긴다. 무엇보다 상대를 넘겨짚다가 결국 큰코다친다. 나는 말이 앞서는 사람이다. 몹쓸 놈이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1. No Image notice by 바람의종 2006/09/16 by 바람의종
    Views 48269 

    ∥…………………………………………………………………… 목록

  2.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3. No Image notice by 風磬 2006/09/09 by 風磬
    Views 209655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4. No Image new
    by 風文
    2024/05/31 by 風文
    Views 15 

    “산따” “고기떡” “왈렌끼”

  5. No Image new
    by 風文
    2024/05/31 by 風文
    Views 27 

    “사겨라” “바꼈어요”

  6. No Image 29May
    by 風文
    2024/05/29 by 風文
    Views 34 

    ‘Seong-jin Cho’ ‘Dong Hyek Lim’ ‘Sunwook Kim’

  7. No Image 29May
    by 風文
    2024/05/29 by 風文
    Views 59 

    어이없다

  8. No Image 10May
    by 風文
    2024/05/10 by 風文
    Views 390 

    주책이다/ 주책없다, 안절부절하다/안절부절못하다, 칠칠하다/칠칠치 못하다

  9. No Image 10May
    by 風文
    2024/05/10 by 風文
    Views 432 

    ‘Merry Christmas!’ ‘Happy New Year!’

  10. No Image 08May
    by 風文
    2024/05/08 by 風文
    Views 466 

    ‘수놈’과 ‘숫놈’

  11. No Image 08May
    by 風文
    2024/05/08 by 風文
    Views 517 

    서거, 별세, 타계

  12. No Image 03Sep
    by 風文
    2021/09/03 by 風文
    Views 620 

    잡담의 가치

  13. No Image 13Oct
    by 風文
    2021/10/13 by 風文
    Views 633 

    말의 권모술수

  14. No Image 08Oct
    by 風文
    2021/10/08 by 風文
    Views 659 

    공공 재산, 전화

  15. No Image 14Sep
    by 風文
    2021/09/14 by 風文
    Views 663 

    무제한 발언권

  16. No Image 14Sep
    by 風文
    2021/09/14 by 風文
    Views 675 

    군인의 말투

  17. No Image 07Sep
    by 風文
    2021/09/07 by 風文
    Views 683 

    또 다른 공용어

  18. No Image 08Oct
    by 風文
    2021/10/08 by 風文
    Views 684 

    정치인들의 말

  19. No Image 10Sep
    by 風文
    2021/09/10 by 風文
    Views 692 

    법률과 애국

  20. No Image 13Sep
    by 風文
    2021/09/13 by 風文
    Views 712 

    악담의 악순환

  21. No Image 10Oct
    by 風文
    2021/10/10 by 風文
    Views 720 

    상투적인 반성

  22. No Image 13Sep
    by 風文
    2021/09/13 by 風文
    Views 738 

    언어적 주도력

  23. No Image 05May
    by 風文
    2020/05/05 by 風文
    Views 761 

    아무 - 누구

  24. No Image 10Oct
    by 風文
    2021/10/10 by 風文
    Views 765 

    어버이들

  25. No Image 05Sep
    by 風文
    2021/09/05 by 風文
    Views 796 

    선교와 압박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