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3.12.18 06:01

가짜와 인공

조회 수 115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가짜와 인공

사는 게 가짜 같을 때가 있다. ‘가짜’는 ‘진짜가 아닌 것’이다. 맞다. 하지만 어떤 게 진짜가 아니어야 가짜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진짜 총’의 자격은? 총의 모양을 띠고 손잡이와 방아쇠가 있고 쇠로 만들었으며 총알이 날아가 사람을 죽이는 데 쓴다. 그렇다면 ‘가짜 총’은 모양은 같더라도 사람을 죽이는 기능이 없거나 플라스틱으로 만든 것이리라.

하지만 인간의 상상력은 무한대. 모양이 달라도 ‘가짜 총’이 될 수 있다. 강도가 ‘지갑을 내놓지 않으면 쏴 버릴 거야’라고 하면서 뒤통수에 총 대신 볼펜을 들이댄다면, 지갑을 꺼내지 않을 재간이 없다. 볼펜이 총. 주먹을 쥔 채로 엄지와 검지를 곧게 뻗어 ㄴ자를 만들어 ‘빵’ 하고 소리를 내면 총이 된다. 손가락이 총. 모양이 달라도 ‘진짜 총’인 경우도 있다. 007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에게 온갖 무기를 만들어주는 큐(Q)는 겉보기엔 우산인데 총알이 발사되는 총을 선물한다. 우산이 총.

사람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 쓰는 것에는 ‘가짜’보다는 ‘인공’이나 ‘인조’라는 말을 쓴다. 진짜가 아니라는 점에서 가짜가 분명하지만, 인간이 계획적이고 인위적으로 이 세계에 개입한다는 걸 강조한다는 점에서 인간적 의지가 묻어난다. 인공위성, 인공관절, 인공강우, 인공폭포, 인조잔디…. 모두 원래의 것과는 다르지만, 기능이 비슷하고 인간 세계를 확장한다는 점에서 환호하기도 한다. 게다가 ‘인공호흡’은 얼마나 간절한 인간적 몸부림인가.

나고 죽는 게 자연의 본질인데, ‘인공’은 그런 성격이 없다. 낡아 폐기할 뿐, 죽지 않는다. 그렇다면 사람의 힘으로 만든 ‘인공지능’이 ‘인간지능’의 무엇에 육박하고 있는지 묻는 것은 인간의 본질을 묻는 것과 다르지 않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1. ∥…………………………………………………………………… 목록

    Date2006.09.16 By바람의종 Views49991
    read more
  2.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Date2007.02.18 By바람의종 Views196540
    read more
  3.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Date2006.09.09 By風磬 Views211526
    read more
  4. 가짜와 인공

    Date2023.12.18 By風文 Views1153
    Read More
  5. '넓다'와 '밟다'

    Date2023.12.06 By風文 Views1379
    Read More
  6. 드라이브 스루

    Date2023.12.05 By風文 Views1340
    Read More
  7. 상석

    Date2023.12.05 By風文 Views1169
    Read More
  8. 흰 백일홍?

    Date2023.11.27 By風文 Views1689
    Read More
  9. '마징가 Z'와 'DMZ'

    Date2023.11.25 By風文 Views1357
    Read More
  10. 반동과 리액션

    Date2023.11.25 By風文 Views1246
    Read More
  11. ‘개덥다’고?

    Date2023.11.24 By風文 Views1420
    Read More
  12. 내색

    Date2023.11.24 By風文 Views1014
    Read More
  13. '밖에'의 띄어쓰기

    Date2023.11.22 By風文 Views1253
    Read More
  14. 몰래 요동치는 말

    Date2023.11.22 By風文 Views1109
    Read More
  15. 군색한, 궁색한

    Date2023.11.21 By風文 Views1138
    Read More
  16. 주현씨가 말했다

    Date2023.11.21 By風文 Views1295
    Read More
  17. ‘가오’와 ‘간지’

    Date2023.11.20 By風文 Views1251
    Read More
  18. 까치발

    Date2023.11.20 By風文 Views1232
    Read More
  19. 쓰봉

    Date2023.11.16 By風文 Views1135
    Read More
  20. 부사, 문득

    Date2023.11.16 By風文 Views1054
    Read More
  21. 저리다 / 절이다

    Date2023.11.15 By風文 Views1232
    Read More
  22. 붓다 / 붇다

    Date2023.11.15 By風文 Views1282
    Read More
  23. 후텁지근한

    Date2023.11.15 By風文 Views1381
    Read More
  24. 조의금 봉투

    Date2023.11.15 By風文 Views1228
    Read More
  25. 본정통(本町通)

    Date2023.11.14 By風文 Views1319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