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3.11.21 06:52

주현씨가 말했다

조회 수 1504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주현씨가 말했다

생존자 이주현씨는 10·29 참사 1주기 시민추모대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처음엔 이 자리를 거절했습니다. 이 짧은 5분 안에 제 마음과 생각을 다 전달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못다 한 말들은 그냥 다 없는 말이 되어 버릴 것 같았습니다.

저는 분향소보다는 이태원을 자주 갔습니다. 그 참사 현장을 제 눈으로 똑똑히 봤고 저라도 선명히 계속 기억해 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기억의 벽 앞에도 자주 갔습니다. 그런데 한번도 메모지에 글을 쓴 적은 없습니다. 말 몇 마디로, 몇 줄의 문장으로 어떻게 이 마음을 다 표현합니까. 단 한 줄도 쓰지 못했습니다. 분향소 앞에서 그분들의 영정을 마주 볼 때는 한 가지 말을 되뇔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 무엇을 바라느냐’고. ‘제가 무엇을 해 드리면 좋겠느냐’고. 그 질문만을 갖고 영정 앞에 섰습니다. 꿈에서조차 그 답을 들려주는 분은 없었어요. 그래서 살아 계실 적에 그분들이 제일 원했던 것, 이태원의 핼러윈을 제대로 즐기는 것, 그거라도 대신 해 드리고자 어제 이태원을 방문했습니다.

새벽에 밤하늘을 봤는데 보름달이 굉장히 밝더라구요. 달이 그렇게 밝은데, 별이 너무 잘 보였습니다. 그분들과 함께 있는 것 같아 다행이라 느꼈어요. 저는 그분들과 함께할 겁니다. 외면한다고 해서 없던 일이 되지 않습니다. 저는 여기에 서 있을 거고, 생존자로 계속 남아 있을 거고, 그때 상황이 어땠는지 계속 기억할 것입니다. 함께해 주세요.
생존자로서 다른 생존자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그 자리 그대로 계셔 주셔서 감사합니다. 날이 춥습니다. 모든 분들, 따뜻하게 잘 챙겨 입으시기 바랍니다. 그것부터 시작이라 생각합니다.”

삶은 우리를 죽지 못하도록 막는다.(루카치)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60388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206868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21826
3194 한글의 역설, 말을 고치려면 風文 2022.08.19 1580
3193 '바치다'와 '받치다' file 風文 2023.01.04 1580
3192 수능 국어영역 風文 2023.06.19 1582
3191 세로드립 風文 2021.10.15 1583
3190 ‘맞다’와 ‘맞는다’, 이름 바꾸기 風文 2022.09.11 1584
3189 통속어 활용법 風文 2022.01.28 1585
3188 주권자의 외침 風文 2022.01.13 1587
3187 남과 북의 협력 風文 2022.04.28 1590
3186 일타강사, ‘일’의 의미 風文 2022.09.04 1592
3185 쌤, 일부러 틀린 말 風文 2022.07.01 1593
3184 인쇄된 기억, 하루아침에 風文 2022.08.12 1596
3183 말다듬기 위원회 / 불통 風文 2020.05.22 1600
3182 무술과 글쓰기, 아버지의 글쓰기 風文 2022.09.29 1600
3181 보편적 호칭, 번역 정본 風文 2022.05.26 1603
3180 식욕은 당기고, 얼굴은 땅기는 風文 2024.01.04 1609
3179 호언장담 風文 2022.05.09 1613
3178 “힘 빼”, 작은, 하찮은 風文 2022.10.26 1613
3177 드라이브 스루 風文 2023.12.05 1615
3176 사라져 가는 한글 간판 風文 2024.01.06 1615
3175 가족 호칭 혁신, 일본식 외래어 風文 2022.06.26 1616
3174 질문들, 정재환님께 답함 風文 2022.09.14 1618
3173 “자식들, 꽃들아, 미안하다, 보고 싶다, 사랑한다, 부디 잘 가라” 風文 2022.12.02 1620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