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잡수시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이라고 불릴 만큼 예절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런 태도가 언어에도 반영돼 우리말에는 높임법이 매우 발달해 있다. 문장의 주체를 높이기 위해 ‘시’를 넣어 말하거나, 말을 듣는 상대에 따라 ‘했니?’, ‘했습니까?’처럼 어미를 다르게 선택해서 말한다. ‘진지, 생신, 잡수시다, 주무시다’처럼 윗사람에게만 쓰는 높임 어휘가 따로 존재하기도 한다.
그런데 때로는 높임말을 잘못 사용해서 곤란을 겪기도 한다. 흔히 틀리는 게 ‘귀 잡수시다’인데, 이게 잘못인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얼마 전에도 “우리 할아버지는 귀가 잡수셔서 말을 잘 못 알아들으세요”라고 말하는 청년을 보았다. ‘귀가 먹으셨다’라고 해야 할 것을 어른에게 ‘먹었다’고 하기가 어려워서 ‘귀가 잡수셨다’고 한 것이다.
‘귀먹다’의 ‘먹다’는 ‘밥을 먹다’의 ‘먹다’와는 다른 말이다. 이때의 ‘먹다’는 ‘막히다’의 뜻을 지닌 옛말에서 비롯된 것으로 ‘귀나 코가 막혀서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게 되다’는 뜻이다. 이 ‘먹다’는 코가 막힌 경우에도 쓸 수 있는데, 감기에 걸려 코맹맹이 소리를 낼 때 ‘코 먹은 소리’라고 하는 게 그런 예이다. 갑자기 귀가 막힌 것처럼 소리가 잘 안 들리거나 체한 것같이 가슴이 답답할 때 쓰는 ‘먹먹하다’나, 앞뒤가 꽉 막혀 답답한 사람을 가리킬 때 쓰는 ‘먹통’ 이 모두 이 ‘먹다’와 관련이 있는 말이다.
‘귀 잡수셨다’는 말은 동물의 귀를 음식으로 섭취했다는 뜻이 되므로 ‘귀먹다’의 높임말이 될 수 없다. 어른에 대해서 쓸 때에는 ‘귀가 먹으셨다’고 하면 된다. 그래도 어른께 ‘먹으셨다’고 말하기가 영 찜찜하다면 ‘귀가 어두우시다’나 ‘귀가 잘 안 들리신다’로 표현하면 될 것이다.
-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공지 | ∥…………………………………………………………………… 목록 | 바람의종 | 2006.09.16 | 65007 |
공지 |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 바람의종 | 2007.02.18 | 211606 |
공지 |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 風磬 | 2006.09.09 | 226311 |
3172 | “힘 빼”, 작은, 하찮은 | 風文 | 2022.10.26 | 1746 |
3171 | 전설의 마녀, 찌라시 / 지라시 | 風文 | 2020.06.16 | 1750 |
3170 | 왜 벌써 절망합니까 - 4. IMF, 막고 품어라, 내 인감 좀 빌려주게 | 風文 | 2022.02.01 | 1751 |
3169 | 사라져 가는 한글 간판 | 風文 | 2024.01.06 | 1753 |
3168 | 통속어 활용법 | 風文 | 2022.01.28 | 1754 |
3167 | 지식생산, 동의함 | 風文 | 2022.07.10 | 1754 |
3166 | 보편적 호칭, 번역 정본 | 風文 | 2022.05.26 | 1757 |
3165 | 드라이브 스루 | 風文 | 2023.12.05 | 1757 |
3164 | 한 두름, 한 손 | 風文 | 2024.01.02 | 1759 |
3163 | “자식들, 꽃들아, 미안하다, 보고 싶다, 사랑한다, 부디 잘 가라” | 風文 | 2022.12.02 | 1760 |
3162 | 사투리 쓰는 왕자 / 얽히고설키다 | 風文 | 2023.06.27 | 1761 |
3161 | 국가 사전 폐기론, 고유한 일반명사 | 風文 | 2022.09.03 | 1763 |
3160 | 8월의 크리스마스 / 땅꺼짐 | 風文 | 2020.06.06 | 1766 |
3159 | 배운 게 도둑질 / 부정문의 논리 | 風文 | 2023.10.18 | 1769 |
3158 | ‘이’와 ‘히’ | 風文 | 2023.05.26 | 1771 |
3157 | 국가의 목소리 | 風文 | 2023.02.06 | 1772 |
3156 | 백열 / 풋닭곰 | 風文 | 2020.05.09 | 1774 |
3155 | 정치의 유목화 | 風文 | 2022.01.29 | 1774 |
3154 | 아이 위시 아파트 | 風文 | 2023.05.28 | 1780 |
3153 | 1.25배속 듣기에 사라진 것들 | 風文 | 2023.04.18 | 1782 |
3152 | 오염된 소통 | 風文 | 2022.01.12 | 1786 |
3151 | ‘맞다’와 ‘맞는다’, 이름 바꾸기 | 風文 | 2022.09.11 | 178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