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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 코로나(2)

나는 ‘단계적 일상 회복’과 ‘위드 코로나’ 중에서 뭐가 더 좋은지를 묻지 않았다. 뭐가 더 친숙하냐고 물었다. 취향이 아니라 말의 습관을 물었다. 취향도 습관에서 나온다. 다만, 취향이나 호불호가 결과라면, 습관은 과정에 주목한다.

중국에는 ‘코로나’가 없다. ‘코로나’의 공식명칭은 ‘신형관상병독폐렴’, 줄여서 ‘신관폐렴’, 더 줄여 ‘신관’이다. ‘위드 코로나’도 ‘여신관병독공존’, 줄여서 ‘여신관공존’이다. 코로나와 공존하기. 아름답도다, 중국어.

우리는 왜 ‘코로나와 함께 살기’가 아니었을까? 범인 찾듯 ‘얼빠진’ 전문가나 정부 당국, 언론을 ‘잡아 족치는’ 게 편한 일이겠지만 복합적인 이유가 있지 않겠나. 정치체제나 언어정책, 외국어를 대하는 언어공동체의 문화나 감수성, 언어와 문자의 차이 같은 것들.

최대한 많은 사람이 내 말을 알아듣게 써야 한다. 문제는 이 당연한 과제를 어떻게 해결해왔느냐다. 보통은 이랬다. 누군가 새로운 문물이나 현상을 소개하며 외국어를 그대로 쓴다. 언론에서는 그걸 그대로 쓴다. 정부 당국자들도 그걸 그대로 쓴다. 널리 퍼진다. 한글단체나 국립국어원에서 어렵다며 대체어를 제안한다. 안 바뀐다. 개탄한다.

비 그친 뒤 우산 펴기, 뒷북치기. 이미 퍼졌으면 낙장불입이다. ‘위드 코로나’도 ‘이른바’라는 말로 강등되었지만 계속 쓰이리라. 그럼 쉬운 말 쓰기는 어떻게 가능할까? 찜질방에서 옷 갈아입히듯이, 중국처럼 아예 길목을 지켜 서서 말 고치기를 해볼 텐가?


'-다’와 책임성

뭐든 반복을 하다 보면 그 일을 더 잘하기 위한 궁리를 할 때도 있고, 적당히 넘길 요령을 찾을 때도 있다. 나도 매주 돌아오는 칼럼에서 가끔 느껴지는 무료함을 어떻게 달래볼까 잔머리를 굴리곤 하지. 그 무료함의 맨 앞줄에는 문장을 끝맺을 때마다 어김없이 쓰게 되는 ‘-다’가 있다. ‘-다’를 피하는 몇가지 잔꾀. 동사가 아닌 단어로 끝맺기, 도치법 쓰기, 괜히 질문하기(‘분명한가?’ ‘않겠나?’), 다른 종결어미 쓰기(‘얼마나 정겨운지’ ‘먹으란 뜻이렷다’).

‘-다’를 쓰면 문장이 중성화가 되어 시공과 상하귀천을 넘나드는 객관적이고 보편타당한 이야기일 것만 같다. 특히 글쓴이를 감출 수 있다. ‘단풍이 들었더라/들었다더라’라고 하면 글쓴이가 문장 속에 숨어 있다. ‘단풍이 들었다’고 하면 글쓴이보다 정보가 도드라진다.

<독립신문>(1896년)만 봐도, 사설(논설)에는 ‘-노라’(‘미리 말씀하여 아시게 하노라’), 단신(잡보)에는 ‘-더라’(‘종을 아침에 조련하였다더라’), 정부 공고(관보)에는 ‘-다’(‘방윤극이가 삼월 십일에 죽다’), 광고에는 ‘-오’(‘보시고 단골로 정하시오’)를 쓰더군. ‘-노라’와 ‘-더라’ 모두 1인칭 주어를 요구한다는 건 의미심장하다. 글에 대한 책임이 글쓴이에게 있음을 분명하게 기입해 놓았으니.

우리 문장이 ‘-다’로 정착된 과정은 글쓴이를 경험의 증언자에서 진리의 전달자로 승격했다는 뜻. 식도 역류만 아니라면, 역류(레트로)도 아주 나쁘진 않아 보인다. 글의 책임성 강화를 위해 주체가 드러나는 ‘-더라, -노라’도 유행하기를 꿈꾸노라.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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