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1.12.01 18:54

더(the) 한국말

조회 수 1551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더(the) 한국말

누구든지 한국말은 한국말다워야 한다는 주장에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그런데 한번 반대로 생각해 보자. 한국말이 외국어다우면 어떨까? 우리 언어를 더 멋있게 만드는 일일까 아니면 망가뜨리는 일일까? 현실에서는 한국말을 마치 외국어인 듯이, 혹은 외국어가 우연히 한국어처럼 들리는 듯한 말을 만들어 내고 있다.

1970년대 한국에서 처음 나온 와인의 이름은 ‘마주 앉았다’는 의미를 풍기는, 그러나 듣기에 따라 외국어처럼 들릴 수도 있는 이름을 붙였다. 당시 국세청에서 외국어로 지은 술 이름을 허용하지 않아서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외래어 상표명이 인기를 누리는 상품은 주로 화장품, 음식, 패션, 건강용품 분야에 속한다. 그래서 그런지 ‘나들이’라는 말을 풀어적은 형태, ‘보드랍게’를 변형시킨 이름, ‘참 좋은’을 연상시키는 이름들이 주로 미용과 관련하여 사용된다. 또 ‘아리따움’을 알파벳으로 표기하여 마치 라틴어인 듯이, 또 달리 보면 한국어인 듯이 지은 점포명도 있으며, 더 나아가 아파트 이름마저 한국어의 ‘푸르지요’인 듯이, 아니면 마치 이탈리아에서 온 말인 듯이 사용되기도 한다.

외국어식 위장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제는 영어의 정관사인 더(the)와 한국어의 비교급을 나타내는 부사인 ‘더’가 중첩된 듯한 표현들도 많아지고 있다. 어찌 보면 한국어의 부사 같고 또 달리 보면 영어의 정관사 같다. 영어의 ‘더(the)’는 명사의 앞에 붙고, 한국어의 ‘더’는 형용사 혹은 형용사적인 명사 앞에 붙게 되어 있다. 별개의 문법 구조를 섞어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표현이 상업적으로 얼마나 큰 이익을 가져오는지는 알 수 없다. 단지 이를 보고 자란 어린이들이 나중에 영어를 배울 때는 혹시 온갖 명사 앞에 무조건 정관사만 붙이려고 하지 않을까 걱정일 뿐이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64679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211285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25979
3282 살인 진드기 風文 2020.05.02 1553
3281 깨알 글씨, 할 말과 못할 말 風文 2022.06.22 1555
3280 “이 와중에 참석해 주신 내외빈께” 風文 2023.12.30 1555
3279 예민한 ‘분’ 風文 2023.05.29 1557
3278 법과 도덕 風文 2022.01.25 1558
3277 사저와 자택 風文 2022.01.30 1558
3276 난민과 탈북자 風文 2021.10.28 1560
3275 울면서 말하기 風文 2023.03.01 1560
3274 김 여사 風文 2023.05.31 1560
3273 온실과 야생, 학교, 의미의 반사 風文 2022.09.01 1561
3272 정보와 담론, 덕담 風文 2022.06.15 1562
3271 금새 / 금세 風文 2023.10.08 1562
3270 ‘내 부인’이 돼 달라고? 風文 2023.11.01 1562
3269 외래어의 된소리 風文 2022.01.28 1563
3268 말의 바깥, 말의 아나키즘 風文 2022.08.28 1563
3267 언어적 적폐 風文 2022.02.08 1570
3266 까치발 風文 2023.11.20 1574
3265 말끝이 당신이다, 고급 말싸움법 風文 2022.07.19 1575
3264 유신의 추억 風文 2021.11.15 1578
3263 돼지의 울음소리, 말 같지 않은 소리 風文 2022.07.20 1578
3262 우리와 외국인, 글자 즐기기 風文 2022.06.17 1579
3261 본정통(本町通) 風文 2023.11.14 1582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