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1.10.15 15:18

‘선진화’의 길

조회 수 122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선진화’의 길

흥미로운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 모두가 바라는 정치의 문제인 동시에 언어의 문제라고도 볼 수 있는 ‘선진화’라는 말이 여러 가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기업이나 대학을 선진화하자는 말에 누구든지 일단은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아직 우리 사회의 온갖 제도에 불완전한 부분이 많다는 것을 널리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선진이란 말이 더 앞서 나아간다는 뜻을 품고 있으니 그것을 마다할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도대체 무엇이 선진인가 하는 것은 다시 한번 곱씹어 보아야 할 말이다. 선진국이라고 하면 무슨 호박이 저절로 굴러떨어지는 낙원처럼 생각하겠지만 선진 사회라는 게 뭐 별거 있겠는가. 남보다 문제를 먼저 발견하고 먼저 해결한 사회가 아니겠는가.

요즈음에 벌어지는 선진화라는 구호의 문제점은 아무 개념 없이 ‘선진’이라는 말을 남용하는 데 있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경영의 선진화, 국방의 선진화, 공기업의 선진화, 의료 선진화 등 거의 모든 주요 과제들을 얼토당토않을 정도로 선진화라는 하나의 개념에다가 꿰어 보려고 아등바등하고 있다. 그러다가 이루어낸 가장 그럴듯한 작품이 바로 속칭 ‘국회선진화법’이 아닌가 한다. 다수당이 횡포를 부리기 어렵게, 그리고 되도록 여당과 야당이 협력하게 만든 작품이다. 또 지난번에 목격했듯이 무제한 발언도 가능하게 만든 법이기도 하다. 국회의장의 본회의 직권상정 요건도 강화했다. 효율성보다는 협력적인 의회제도를 강화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이 법에 대해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불만이 있는 모양이지만 잘만 활용한다면 ‘협치’와 ‘민주주의’가 공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차제에 의회제도의 모순 하나를 이렇게 우리 손으로 풀어 보는 것도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 법으로 진정 의미 있는 선진화된 사회에 먼저 도달했으면 한다. 선진국은 이러면서 달성되는 것이다.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52252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98777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13776
202 경텃절몽구리아들 / 모이 風文 2020.05.24 1317
201 기역 대신 ‘기윽’은 어떨까, 가르치기도 편한데 風文 2023.11.14 1317
200 말끝이 당신이다, 고급 말싸움법 風文 2022.07.19 1316
199 대통령과 책방 風文 2023.05.12 1315
198 우리와 외국인, 글자 즐기기 風文 2022.06.17 1314
197 깻잎 / 기림비 1 風文 2020.06.01 1313
196 주현씨가 말했다 風文 2023.11.21 1311
195 ‘가오’와 ‘간지’ 風文 2023.11.20 1306
194 '밖에'의 띄어쓰기 風文 2023.11.22 1306
193 뒤치다꺼리 風文 2023.12.29 1305
192 붓다 / 붇다 風文 2023.11.15 1304
191 ‘다음 소희’에 숨은 문법 風文 2023.02.27 1303
190 남친과 남사친 風文 2023.02.13 1300
189 날씨와 인사 風文 2022.05.23 1297
188 구경꾼의 말 風文 2022.12.19 1296
187 ‘며칠’과 ‘몇 일’ 風文 2023.12.28 1296
186 교정, 교열 / 전공의 風文 2020.05.27 1295
185 세계어 배우기 風文 2022.05.11 1294
184 생각보다, 효녀 노릇 風文 2022.09.02 1294
183 정보와 담론, 덕담 風文 2022.06.15 1293
182 순직 風文 2022.02.01 1292
181 우방과 동맹, 손주 風文 2022.07.05 1291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41 142 143 144 145 146 147 148 149 150 151 152 153 154 155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