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08.03.22 16:06

오랫도리

조회 수 8060 추천 수 8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오랫도리

옛날 서적을 읽다 보면 오늘날 쓰지 않는 말들이 나타날 때가 적잖다.〈열녀춘향수절가〉에서 이도령이 천자문을 읽자, 방자가 한 마디 던진다. “여보 도련님, 점잖은 사람이 천자는 또 웬일이오?”, “소인놈도 천자 속은 아옵네다.” 그러고는 “높고 높은 하늘 천, 깊고 깊은 따 지, 홰홰 칭칭 가물 현, 불타것다 누루 황”이라고 읽는 모습은 가히 웃음을 유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실은 한문 공부의 첫걸음이라고 할 ‘천자문’ 풀이조차도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다. 그 가운데 하나가 ‘오라 문’이다.

홍양호의 〈북색기략〉에는 함북 방언에 문(門)을 뜻하는 ‘오라’가 있고, 덕(德)을 뜻하는 ‘고부’(高阜)가 있다고 한다. 함북 방언은 조선 초기 육진을 개척할 때 경상도 사람을 이주시켰으므로 신라 고어라고 할 수 있다. 황윤석은 영남 인본 천자문을 바탕으로 ‘오라’가 영남 고어라고 하였고, 객사에서 아이들이 대문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라고도 풀이하였다. 이처럼 ‘문’을 ‘오라’로 풀이한 예는 더 발견되는데,〈석봉 천자문〉의 ‘오라 문’이나,〈소학언해〉의 ‘문 오래며 과실 남글’[門巷果木]이 이에 해당한다.

그런데 고 김윤학 교수 연구에서, 강화 화도면에 ‘오랫도리’라는 밭이름이 있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한 동네 들머리에 놓인 이 밭을 ‘출입문에 해당하는 밭’이라고 생각하며 ‘오랫도리’라 불렀다는 것이다. ‘도리’는 ‘둘레’란 뜻이므로, ‘동리로 드는 문의 주위에 놓인 밭’이다. 땅이름에 우리말이 화석처럼 깃든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허재영/건국대 강의교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52911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99487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14461
268 “자식들, 꽃들아, 미안하다, 보고 싶다, 사랑한다, 부디 잘 가라” 風文 2022.12.02 1427
267 오염된 소통 風文 2022.01.12 1426
266 ‘건강한’ 페미니즘, 몸짓의 언어학 風文 2022.09.24 1423
265 사투리 쓰는 왕자 / 얽히고설키다 風文 2023.06.27 1423
264 드라이브 스루 風文 2023.12.05 1419
263 ‘나이’라는 숫자, 친정 언어 風文 2022.07.07 1418
262 1도 없다, 황교안의 거짓말? 風文 2022.07.17 1418
261 풀어쓰기, 오촌 아재 風文 2022.10.08 1415
260 1.25배속 듣기에 사라진 것들 風文 2023.04.18 1415
259 가족 호칭 혁신, 일본식 외래어 風文 2022.06.26 1414
258 공적인 말하기 風文 2021.12.01 1411
257 마녀사냥 風文 2022.01.13 1409
256 영어 공용어화 風文 2022.05.12 1408
255 ‘~스런’ 風文 2023.12.29 1408
254 무술과 글쓰기, 아버지의 글쓰기 風文 2022.09.29 1407
253 인쇄된 기억, 하루아침에 風文 2022.08.12 1406
252 지슬 風文 2020.04.29 1406
251 사수 / 십이십이 風文 2020.05.17 1405
250 북한의 ‘한글날’ 風文 2024.01.06 1404
249 남과 북의 협력 風文 2022.04.28 1399
248 통속어 활용법 風文 2022.01.28 1398
247 혁신의 의미, 말과 폭력 風文 2022.06.20 1398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38 139 140 141 142 143 144 145 146 147 148 149 150 151 152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