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3.06.09 05:56

망신

조회 수 1908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망신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마음은 몸과 이어져 있다. 볼 수도 없고 보여줄 수도 없건만, 몸이 티를 내니 숨길 수가 없다. 기쁘면 입꼬리를 올리고, 슬프면 입술을 씰룩거린다. 실망하면 어깨가 처지고, 부끄러우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분하면 어금니를 깨물고 긴장하면 몸이 굳는다. 두려우면 닭살이 돋는다. 몸은 마음이 하는 말이다.

‘망신’(亡身). 몸을 망가뜨리거나 몸이 망가졌다는 뜻이었으려나. 고행처럼 몸을 고통 속으로 밀어 넣어 육신의 욕망을 뛰어넘고 참자유에 이르겠다는 의지였으려나.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인데, 몸을 잊음으로써 인간의 존재 이유를 묻는 것이겠지. 오체투지, 단식, 묵언, 피정, 금욕도 망신(고행)의 일종이다.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궁리하는 일이라면 여행이나 산책마저도 망신이려나? ‘몸을 잊고 던지는’ 망신은 쉽지가 않다.

그래서 그런가. 몸은 안 던지고, 세 치 혀만 잘못 놀려 스스로 무덤을 판다. 아는 척, 잘난 척, 있는 척 헛소리를 하고 허세를 부리다가 들통이 난다. 자초한 일이니 누구를 탓하랴. 망신은 망심(亡心). 얼굴을 들 수 없고 낯이 깎인다(대패에 얼굴이 깎여나가는 아픔이라니). 망신도 크기가 있는지, ‘개망신’을 당하면 며칠은 집 밖에 나갈 수 없고, ‘패가망신’을 당하면 전 재산을 잃고 몰락한다. 홀로 감당하지 않고 ‘집안 망신’이나 ‘나라 망신’을 시켜 민폐를 끼치기도 한다.

인간은 실수하는 동물이다. 크고 작은 망신을 피할 수 없다. 다만, 망신살이 뻗쳤는데도 낯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 늘고 있는 건 분명하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58892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205526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20346
3370 몰래 요동치는 말 風文 2023.11.22 1311
3369 권력의 용어 風文 2022.02.10 1315
3368 어떤 청탁, ‘공정’의 언어학 風文 2022.09.21 1318
3367 외교관과 외국어, 백두산 전설 風文 2022.06.23 1319
3366 개헌을 한다면 風文 2021.10.31 1321
3365 비대칭적 반말, 가짜 정보 風文 2022.06.07 1322
3364 올바른 명칭 風文 2022.01.09 1323
3363 왜 벌써 절망합니까 - 8. 미래를 창조하는 미래 風文 2022.05.17 1324
3362 말과 서열, 세대차와 언어감각 風文 2022.06.21 1324
3361 쓰봉 風文 2023.11.16 1324
3360 언어적 도발, 겨레말큰사전 風文 2022.06.28 1325
3359 이중피동의 쓸모 風文 2023.11.10 1325
3358 짧아져도 완벽해, “999 대 1” 風文 2022.08.27 1329
3357 내연녀와 동거인 風文 2023.04.19 1330
3356 언어의 혁신 風文 2021.10.14 1332
3355 사람, 동물, 언어 / 언어와 인권 風文 2022.07.13 1332
3354 왜 벌써 절망합니까 - 8. 내일을 향해 모험하라 風文 2022.05.12 1333
3353 막장 발언, 연변의 인사말 風文 2022.05.25 1333
3352 일고의 가치 風文 2022.01.07 1334
3351 교정, 교열 / 전공의 風文 2020.05.27 1335
3350 1일1농 합시다, 말과 유학생 風文 2022.09.20 1337
3349 속담 순화, 파격과 상식 風文 2022.06.08 1340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