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3.05.22 06:13

단골

조회 수 124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단골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결혼할 사람이 있었다. 다섯살 무렵. 아버지와 옆 마을 아저씨는 자식들이 크면 결혼시키자는 약조를 맺었다. 풉, 가난뱅이들의 정략결혼이라니. 이듬해 겨울, 어머니는 그 아이가 많이 아파 단골무당을 불러 굿을 한다고 하니 같이 가자고 했다. 단칸방 귀퉁이에 앉아 두려운 눈으로 무당의 푸닥거리를 보았다. 며칠 후 그 아이는 죽었다.

애초에 ‘단골’이란 말은 굿을 하거나 점을 칠 때 자주 부르는 ‘무당’을 뜻했다. 지금은 자주 가는 가게라는 뜻으로 일반화되었다. 손님도 주인을 보고 단골이라 하고, 주인도 손님한테 단골이라 한다. 서로가 서로를 단골이라 부르니 재미있다. 어디서든 ‘갑을’을 따지는 사회에서 이런 말이 또 있을까.

‘단골’은 사랑과 닮았다. 그냥, 좋다. 왜냐고 물으면 달리 답을 찾을 수 없을 때, 그게 단골이다. 더 맛있는 집이 널려 있건만, ‘왠지 모르게’ 그 집이 편하고 맛있고 먼저 떠오르고 다시 가고(보고) 싶어진다.

횟수는 안 중요하다. 뜨문뜨문 가도 애틋하다. 규격화된 맛과 정해진 응대 절차를 따르는 체인점이 단골이 되기는 쉽지 않다. ‘맛집’이나 ‘핫 플레이스’와도 다르다. 그 장소에 내가 포함되어 있다는 느낌, 그 공간의 역사에 나도 동참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단골의 심리적 조건이다.

울적하게 앉아 맥주 몇병을 세워두고 있는 나에게 단골집 주인이 “오늘은 비참하게 앉아 있네”라 한다. “그렇게 보여요?” 하며 같이 웃는다. 얼굴이 불콰하도록 먹고 나서려는데, 그냥 가라며 등을 떠민다. 내 삶은 단조롭긴 하지만, 행복하다. 무도한 시대를 버티는 아지트, 단골.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40894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87318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02420
3344 올곧다 바람의종 2007.03.03 13959
3343 우레 바람의종 2007.03.03 8865
3342 우려먹다(울궈먹다) 바람의종 2007.03.03 13916
3341 웅숭깊다 바람의종 2007.03.03 17036
3340 을씨년스럽다 바람의종 2007.03.15 9854
3339 이녁 바람의종 2007.03.15 13901
3338 자그마치 바람의종 2007.03.16 11394
3337 자라목 바람의종 2007.03.16 7521
3336 잡동사니 바람의종 2007.03.22 9330
3335 장가들다 바람의종 2007.03.22 10263
3334 제비초리 바람의종 2007.03.23 13955
3333 적이 바람의종 2007.03.23 7259
3332 젬병 바람의종 2007.03.24 10560
3331 조바심하다 바람의종 2007.03.24 6597
3330 조카 바람의종 2007.03.26 11037
3329 줄잡아 바람의종 2007.03.26 11073
3328 지루하다 바람의종 2007.03.27 9490
3327 지름길 바람의종 2007.03.27 6502
3326 진저리 바람의종 2007.03.28 7974
3325 쫀쫀하다 바람의종 2007.03.28 10069
3324 천둥벌거숭이 바람의종 2007.03.29 8584
3323 칠칠하다 바람의종 2007.03.29 7940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56 Next
/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