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3.04.19 06:10

내연녀와 동거인

조회 수 85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내연녀와 동거인

가끔 연락하는 <한겨레> 기자가 있다. 말을 주제로 기자끼리 토론이 붙나 보더라. 말에 대한 감각이 천차만별이니 토론이 자못 뜨거워 보였다. ‘기자들이 말에 대한 고민이 많군’ 하며 즐거워한다. ‘내기’ 를 거는지는 모르지만, 급기야 생각 없이 사는 나한테까지 질문을 한다. 내 대답은 늘 ‘어정쩡’ 하다. ‘이렇게 볼 수도, 저렇게 볼 수도 있지 않겠소이까?’

며칠 전엔 아트센터나비 관장 노소영씨가 티앤씨(T&C)재단 이사장 김희영씨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김씨를 에스케이(SK) 회장 최태원씨의 ‘내연녀’ 라 할지 ‘혼외 동거인’ 이라 할지로 논쟁이란다.

상식적(?) 으로 보면, ‘내연녀 / 내연남’은 개인의 사생활을 매도하고 편견을 조장하는 말이니 ‘혼외 동거인’ 이라 쓰는 게 맞다고 할 것이다. 흥미롭게도 연락해온 기자는 노소영씨 입장에 주목했다. 노씨가 소송을 한 데에는 두 사람의 내연 관계에서 받은 정신적 상처가 영향을 끼쳤을 텐데, 김씨에게 ‘혼외 동거인’(‘동거녀’ 도 아닌) 이란 중립적인 표현을 쓰는 게 온당한가? 은밀함, 비도덕성, 부적절함 같은 말맛이 풍기는 ‘내연녀’ 란 말을 써야 ‘본처’의 분노를 조금이나마 담을 수 있지 않겠냐는 마음일 듯. 이렇게 볼 수도, 저렇게 볼 수도 있겠다.

나는 다른 데에 눈길이 갔다. ‘내연녀’ 와 ‘혼외 동거인’ 사이에서 새삼 고민하게 된 계기가 뭘까 하는 것. 유사 이래로 혼외 연애 범죄는 끊임이 없었다. 그걸 다룬 기사는 한결같이 ‘내연녀 / 내연남 고소 / 협박 / 폭행 / 살해’ 였다. 그렇다면 혹시 고결한 재벌가의 연애사를 다루다 보니 비로소 번민이 시작된 건 아닐까.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39051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85649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00531
3278 태극 전사들 風文 2022.01.29 894
3277 대명사의 탈출 風文 2021.09.02 895
3276 ‘다음 소희’에 숨은 문법 風文 2023.02.27 895
3275 주어 없는 말 風文 2021.11.10 899
3274 비판과 막말 風文 2021.09.15 901
3273 울면서 말하기 風文 2023.03.01 902
3272 개념의 차이, 문화어 風文 2022.06.13 903
3271 뒤죽박죽, 말썽꾼, 턱스크 風文 2022.08.23 904
3270 법과 도덕 風文 2022.01.25 905
3269 더(the) 한국말 風文 2021.12.01 906
3268 말의 바깥, 말의 아나키즘 風文 2022.08.28 908
3267 언어의 혁신 風文 2021.10.14 912
3266 김치 담그셨어요? 風文 2024.02.08 914
3265 가던 길 그냥 가든가 風文 2024.02.21 916
3264 왕의 화병 風文 2023.11.09 917
3263 호언장담 風文 2022.05.09 920
3262 있다가, 이따가 風文 2024.01.03 920
3261 야민정음 風文 2022.01.21 922
3260 혼성어 風文 2022.05.18 923
3259 뒷담화 風文 2020.05.03 925
3258 ‘시월’ ‘오뉴월’ 風文 2024.01.20 926
3257 말의 세대 차 風文 2023.02.01 927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56 Next
/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