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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과 개소리

거짓말하는 사람과 참말 하는 사람은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진실(사실)과 연루돼 있다는 점. 거짓말쟁이도 진실에 신경 쓴다. 사실에 반하는 거짓말로 상대방을 속이려면 불가피하게 진실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개소리에 대하여>). 돈을 훔치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하려면 자신이 돈을 훔쳤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하듯이.

개소리는 다르다. 개소리는 그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입맛에 따라, 이익에 맞춰 튀어나오는 말이다. 그의 말 속에는 진실도 없고 거짓도 없다. 그저 ‘속셈’만 있을 뿐. 타인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이 ‘아는 척, 가진 척, 센 척’ 했던가. 아이 앞의 어른, 학생 앞의 선생, 카메라 앞의 정치인은 뭐가 진실인지 모르면서도 마치 고매한 견해를 가진 듯 떠들어야 하는 경우가 잦다. 이때 흔히 나오는 말이 개소리다. 허풍, 흰소리, 허튼소리, 빈말이라고도 할까. 동조세력이 있다면 가속이 붙어 순식간에 세상을 처리 불가능한 말의 쓰레기장으로 만든다.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에서 김은혜 홍보수석은 그나마 진실에 관심을 가졌다. 15시간 동안의 침묵은 무엇이 진실인지 알고 거기에 맞서 어떻게 그럴듯한 거짓말을 만들지를 고심한 시간이었을 테니. 지금은? 잘 모르지만, 거짓말쟁이보다 개소리쟁이들이 판치는 것만은 확실하다.

정녕 진실에 관심이 없다면, 차라리 말년 병장처럼 해롭지 않은 일로 무료한 시간을 보내면 어떨지. ‘손을 벨’ 정도로 군복 줄을 잡거나, ‘파리가 미끄러지도록’ 군화에 광을 내다보면 시간이 잘 간다. 그러는 게 해로운 개소리를 싸지르는 것보다 낫지 않은가.


혼잣말의 비밀

‘늙으면 애가 된다’는 얘기는 ‘말’에도 그대로 쓸 수 있다. 노인은 혼잣말을 쓰면서 애가 된다. 노인의 혼잣말은 노년의 외로움과는 상관없다. 나처럼 현실에 안주하며 편하게 사는 자들의 입에서도 혼잣말이 줄줄 새어나오는 걸 보면.

아이는 사람 대하듯 사물을 대한다. 사람처럼 사물에도 마음이 있다고 여긴다. 혼자인데도 사물과 대화하며 쉼 없이 쫑알거린다. 노인도 아이처럼 사물에 말을 거니 혼잣말이 늘 수밖에. 낡은 집 벽에 난 금을 보면서 ‘조금만 더 버텨줘’라 하고, 아침에 울리는 자명종 소리에 ‘이제 그만 좀 울어’라 한다. 게다가 혼잣말은 늘 반말로 하게 되는데, 감탄사나 신음소리를 닮았다. ‘쯧쯧, 저러면 안되지’ ‘젊은이가 고생이 많군’ ‘벌써 가을이네’ ‘이놈의 세상, 뒷걸음질만 치는군’ 겉으론 말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이성보다는 감성에 더 가깝다.

실제로 생각은 말을 능가한다. 말의 검문을 받지 않고도 생각할 수 있다. ‘가을바람, 빨래, 춤….’ 뭐든 생각해 보라. 말이 없어도 특유의 느낌, 소리, 색깔, 장면, 움직임이 떠오른다. ‘연필’이나 ‘양말’, ‘짜장면’ 같은 사물도 고유한 생김새가 떠오르고 그걸로 뭔가를 하는(쓰거나 신거나 후루룩 먹는) 장면이 함께 떠오른다. 감각만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럼에도 끝까지 말의 끈을 놓지 못한다. 인간은 처음부터 사회적(대화적, 상호적) 존재라는 걸 확인하는 열쇠가 말이기라도 하듯이. 혼잣말은 사람이 아무리 혼자 있어도 사회 속에 있다는 걸 확인해준다. ‘개인과 사회’가 아니라, ‘사회 속 개인’이란 걸.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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