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2.05.20 13:17

귀순과 의거

조회 수 68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귀순과 의거

남과 북이 증오에 익숙해진 지 퍽 오래다. 그래도 근간에는 같은 말도 어느 정도 가려가며 쓰려는 것 같아 다행이다. 한때는 ‘괴뢰’라는 말을 썼지만 어느 결엔가 그 말은 사라졌다. 괴뢰는 꼭두각시란 뜻인데 요즘 북한 정책은 아무리 봐도 너무 뻣뻣해서 그렇지 누군가의 꼭두각시인 것 같지는 않다. 분단 이후 도대체 몇 명이나 북에서 남으로, 혹은 남에서 북으로 삶터를 바꿨을까? 철책선을 둘러보면 도대체 이렇게 엄중한 차단선을 어찌 감히 넘어갈 엄두를 냈는지 믿어지지가 않는다. 그럼에도 그것을 넘었다면 필경 이해하기 어려운 깊은 곡절과 사연이 있었으리라. 우리는 그렇게 70여 년을 보냈다.

우리는 북에서 남쪽으로 넘어오는 것을 ‘귀순’이라고 한다. ‘반역의 진영’에서 마음을 바꿔 ‘순종’을 하려 한다는 뜻이다. 반대로 남에서 북으로 넘어가는 것을 북에서는 ‘의거’라고 한다. ‘정의로운 행동’이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주관적인 이름 짓기인가? 적대적이던 쪽으로 국경을 넘는 것은 비상한 각오 없이는 불가능하다. 또 그럴 만한 ‘절박함’도 있어야 한다. 그런 것을 이렇게 ‘순종’이나 ‘정의’라는 단순 유치한 개념으로 묶어버리는 일은 온당한 언어 사용이 아니다. 그냥 정치적으로 이용하겠다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임의로 국경선을 넘는 것은 정확하게 표현하면 ‘망명’이다. 그리고 그 원인은 복잡한 ‘정치성’과 개인의 ‘내면적 아픔’이 뒤엉켜 있다. 우리가 민주 사회를 지향한다면 북에서 오는 사람들이 배가 고파 왔건, 음악이 좋아서 왔건, 철학적 근거를 가지고 왔건 ‘망명자’라는 객관적 신분과 그에 걸맞은 법적인 보호를 해 주는 것이 옳다. 올바른 명칭과 올바른 법적 대우, 그리고 인간적인 존중, 이것이 민주 사회가 향해야 할 바른 태도이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39338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85863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00785
3190 삼디가 어때서 風文 2022.02.01 1014
3189 귀 잡수시다? 風文 2023.11.11 1020
3188 ‘머스트 해브’와 ‘워너비’ 風文 2024.03.27 1022
3187 형용모순, 언어의 퇴보 風文 2022.07.14 1023
3186 돼지의 울음소리, 말 같지 않은 소리 風文 2022.07.20 1023
3185 정치인의 애칭 風文 2022.02.08 1025
3184 ‘나이’라는 숫자, 친정 언어 風文 2022.07.07 1025
3183 1.25배속 듣기에 사라진 것들 風文 2023.04.18 1025
3182 언어적 적폐 風文 2022.02.08 1026
3181 ‘부끄부끄’ ‘쓰담쓰담’ 風文 2023.06.02 1027
3180 쌤, 일부러 틀린 말 風文 2022.07.01 1028
3179 되묻기도 답변? 風文 2022.02.11 1032
3178 직거래하는 냄새, 은유 가라앉히기 風文 2022.08.06 1033
3177 부동층이 부럽다, 선입견 風文 2022.10.15 1034
3176 이단, 공교롭다 風文 2022.08.07 1037
3175 만인의 ‘씨’(2) / 하퀴벌레, 하퀴벌레…바퀴벌레만도 못한 혐오를 곱씹으며 風文 2022.11.18 1037
3174 '넓다'와 '밟다' 風文 2023.12.06 1037
3173 어떤 문답 관리자 2022.01.31 1038
3172 표준말의 기강, 의미와 신뢰 風文 2022.06.30 1038
3171 노랗다와 달다, 없다 風文 2022.07.29 1039
3170 뉴 노멀, 막말을 위한 변명 風文 2022.08.14 1039
3169 드라이브 스루 風文 2023.12.05 1041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 156 Next
/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