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1.10.14 20:17

재판받는 한글

조회 수 95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재판받는 한글

한글이 재판을 받는다. 아니, 정확하게 말해서 한글을 우리의 고유한 글자로 정의한 ‘국어기본법’의 조항이 위헌 소송을 당해서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오랜 세월 우리가 사용해온 한자도 우리의 글자로 인정해야 하며 이를 제약하는 것은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는 주장에 근거한 소송이다. 한자도 우리의 문자라면 기본적인 필요조건이 있다. 한자의 ‘규범’을 우리가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논쟁적인 한자음을 토론할 때에는 주로 중국 청나라 때의 ‘강희자전’ 같은 문헌에서 논거를 찾아 왔다. 우리가 한자의 한 점, 한 획을 우리에게 편리하게 고치지 못해 왔다. 한번도 우리 글자라고 생각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어기본법은 한글을 쓰든 한자를 쓰든 모든 개인의 사사로운 문자 사용을 규제하지 않는다. 오로지 ‘공공기관의 공문서’만을 대상으로 삼는다. 그것은 문자 사용을 규제하고 제약을 가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널리 편하게 사용하는 문자를 쓰도록 함으로써 보편적인 소통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또 ‘필요에 따라’ 괄호 속에 한자나 그 밖의 문자까지 넣을 수 있다는 조항도 있다. 이것이 왜 헌법에서 정한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제약하는 조항인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법률 가운데 국민을 가장 행복하게 만든 조항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누구든지 문맹만 벗어나면 대한민국의 모든 공문서에 접근하고 누릴 수 있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오랜 세월 한자를 사용해온 것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 오랜 세월 우리의 언어는 한자와 몹시 불편한 관계를 가져왔다. 그래서 한글이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언어를 활성화시켜 교육과 문화의 발전과 삶의 질 향상을 꾀하는 것이 국어기본법의 목적이다. 헌법재판소가 상식에 근거해서 국민의 행복한 소통의 권리를 늘 든든하게 지켜주었으면 한다.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54307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200931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15838
3106 ‘사흘’ 사태, 그래서 어쩌라고 風文 2022.08.21 1587
3105 참고와 참조 風文 2023.07.09 1587
3104 독불장군, 만인의 ‘씨’ 風文 2022.11.10 1590
3103 ‘걸다’, 약속하는 말 / ‘존버’와 신문 風文 2023.10.13 1592
3102 위탁모, 땅거미 風文 2020.05.07 1597
3101 납작하다, 국가 사전을 다시? 주인장 2022.10.20 1598
3100 ‘개덥다’고? 風文 2023.11.24 1600
3099 공화 정신 風文 2022.01.11 1601
3098 질척거리다, 마약 김밥 風文 2022.12.01 1601
3097 웃어른/ 윗집/ 위층 風文 2024.03.26 1602
3096 한국어의 위상 風文 2022.05.11 1608
3095 ‘괴담’ 되돌려주기 風文 2023.11.01 1610
3094 8월의 크리스마스 / 땅꺼짐 風文 2020.06.06 1613
3093 열쇳말, 다섯 살까지 風文 2022.11.22 1613
3092 이 자리를 빌려 風文 2023.06.06 1615
3091 우리나라 風文 2023.06.21 1616
3090 좋음과 나쁨, 제2외국어 교육 風文 2022.07.08 1617
3089 국어 영역 / 애정 행각 風文 2020.06.15 1632
3088 ‘외국어’라는 외부, ‘영어’라는 내부 風文 2022.11.28 1637
3087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 風文 2024.02.17 1639
3086 말 많은 거짓말쟁이 챗GPT, 침묵의 의미를 알까 風文 2023.06.14 1646
3085 4·3과 제주어, 허버허버 風文 2022.09.15 1650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