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1.09.05 19:28

선교와 압박

조회 수 884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선교와 압박

  종교는 선교 활동을 통해 종교적 확신을 확산시킨다. 가장 오래된 방식은 통치자를 개종시키는 방식이었던 것 같다. 로마제국의 콘스탄티누스라든지 프랑크왕국의 클로비스처럼 통치자의 개종이 백성의 신앙을 규정했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들어오는 과정에서도 왕실의 개종이 선행했던 것도 그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기본적인 선교 방식은 개개인에 대한 설득이다. 곧 대화를 통하는 방식이다.

 대화를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대화라는 것이 무척 자유분방해 보이지만 엄중한 규칙들이 나타난다. 그것은 서로의 상호행위를 기초로 하며 모든 발화 단위가 일정한 맥락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는 것 등이다. 또 말 순서를 지키고 발언권을 분배하기 위한 규칙도 분석되는데 이를 지키지 않으면 그것은 대화가 아닌 강압이나 언어적 공격이나 다름없다. 일방적으로 강요되는 명령과 이에 대한 무조건적인 수긍 같은 것은 당연히 대화로 인정하기 어렵다.

 대화 가운데 또 중요한 것은 화제를 선정하는 권리다. 상대방이 선정한 화제에 관심이 가지 않으면 누구든지 무관심을 드러낼 권리가 있다. 왜 이 문제에 관심이 없냐고 집요하게 따지고 드는 것은 무례한 일이다. 우리가 상식으로 받아들이는 시민 문화가 아니다. 자신이 그러한 화제에 끼어들기 싫다는 것을 표시하는 행위도 의당 존중받아야 한다.

특정 종교를 열성적으로 선교하는 사람들의 신앙심은 충분히 믿어 의심치 않으나 많은 경우에 이들의 공세적인 대화 방식은 여러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 대화라는 것은 화제의 선택부터 발언권의 분배에 이르기까지 잘 지켜야 하는 ‘질서 잡힌 행동 체계’이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다듬어져 있는 까다로운 문화적 기제를 바르게 사용해야 한다. 아무리 신성한 교리나 신앙의 문제라 하더라도 이런 질서를 무시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강요하는 대화는 부작용과 역효과만 불러올 뿐이다.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1. No Image notice by 바람의종 2006/09/16 by 바람의종
    Views 52865 

    ∥…………………………………………………………………… 목록

  2.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3. No Image notice by 風磬 2006/09/09 by 風磬
    Views 214389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4. No Image 23May
    by 風文
    2022/05/23 by 風文
    Views 1092 

    왜 벌써 절망합니까 - 훼방만 말아 달라

  5. No Image 13Feb
    by 관리자
    2022/02/13 by 관리자
    Views 1097 

    왜 벌써 절망합니까 - 8. 경영하지 않는 경영자들

  6. No Image 16Nov
    by 風文
    2023/11/16 by 風文
    Views 1100 

    부사, 문득

  7. No Image 17May
    by 風文
    2022/05/17 by 風文
    Views 1104 

    영어 절대평가

  8. No Image 15Aug
    by 風文
    2022/08/15 by 風文
    Views 1108 

    불교, 경계를 넘다, 동서남북

  9. No Image 22Dec
    by 風文
    2023/12/22 by 風文
    Views 1112 

    여보세요?

  10. No Image 15Sep
    by 風文
    2021/09/15 by 風文
    Views 1114 

    편견의 어휘

  11. No Image 10Feb
    by 風文
    2022/02/10 by 風文
    Views 1115 

    왜 벌써 절망합니까 - 4. 자네 복싱 좋아하나?

  12. No Image 11Oct
    by 風文
    2022/10/11 by 風文
    Views 1123 

    안녕히, ‘~고 말했다’

  13. No Image 21Apr
    by 風文
    2023/04/21 by 風文
    Views 1127 

    댄싱 나인 시즌 스리

  14. No Image 16Aug
    by 風文
    2022/08/16 by 風文
    Views 1129 

    사과의 법칙, ‘5·18’이라는 말

  15. No Image 07Oct
    by 風文
    2022/10/07 by 風文
    Views 1133 

    댕댕이, 코로나는 여성?

  16. No Image 09Jan
    by 風文
    2022/01/09 by 風文
    Views 1135 

    올바른 명칭

  17. No Image 10Feb
    by 風文
    2022/02/10 by 風文
    Views 1135 

    권력의 용어

  18. No Image 31Oct
    by 風文
    2021/10/31 by 風文
    Views 1136 

    왜 벌써 절망합니까 - 4. 선한 기업이 성공한다

  19. No Image 10Nov
    by 風文
    2023/11/10 by 風文
    Views 1139 

    이중피동의 쓸모

  20. No Image 27Aug
    by 風文
    2022/08/27 by 風文
    Views 1143 

    짧아져도 완벽해, “999 대 1”

  21. No Image 18Aug
    by 風文
    2022/08/18 by 風文
    Views 1151 

    고양이 살해, 최순실의 옥중수기

  22. No Image 04Aug
    by 風文
    2022/08/04 by 風文
    Views 1154 

    올해엔 저지른다, ‘죄송하지만’

  23. No Image 26Jan
    by 風文
    2022/01/26 by 風文
    Views 1155 

    말과 공감 능력

  24. No Image 23Jun
    by 風文
    2022/06/23 by 風文
    Views 1155 

    외교관과 외국어, 백두산 전설

  25. No Image 28Oct
    by 風文
    2021/10/28 by 風文
    Views 1161 

    언어와 인권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