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07.11.07 20:21

는개와 느리

조회 수 10550 추천 수 1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는개와 느리

땅 위의 목숨이 모두 그렇듯 우리 겨레도 죽살이를 비와 눈에 걸어놓고 있었다. 요즘에는 상점·공장·회사·사무실 같이 집안에서 많이 살지만 지난날에는 농사짓고 고기잡으며 사시사철 집밖 한데서 눈비와 어우러져 살았다. 그만큼 눈비에 마음을 쓰지 않을 수 없었기에 그 이름도 어지간히 많다.

‘는개’는 국어사전에도 올라서 꽤 널리 알려진 말이다. “안개보다는 조금 굵고 이슬비보다는 가는 비”라고 풀이해 놓았다.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모자라는 풀이다. ‘는개’는 “늘어진 안개”라는 어구가 줄어진 낱말임을 밝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는개’는 비라고 하기가 뭣해서 안개 쪽에다 붙여놓은 이름인 셈인데, ‘는개’처럼 비라고 하기가 뭣해서 비라고 하지 않은 것에 ‘먼지잼’이 또 있다. ‘먼지잼’은 “공중에 떠도는 먼지를 땅으로 데려와서 잠재우는 것”이라는 뜻의 풀이를 그대로 줄여 만든 낱말이다.

‘느리’는 국어사전에 오르지도 못한 낱말이다. 농사짓고 고기잡는 일을 내버려 눈비에서 마음이 떠난 요즘은 들어볼 수도 없고,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쓰지 않아 잊어버렸나 싶은 낱말이다. 지난 겨울 어느 이른 아침 대전에서 수십 년 만에 ‘느리’를 만나 오래 잊고 살았던 이름을 새삼 떠올렸다. ‘느리’는 “늘어난 서리”라는 어구를 줄여서 만든 낱말이지만 뜻은 그보다 훨씬 겹겹이다. 모두 잠든 사이에 살짝 오다 그친 ‘도둑눈’이면서 마치 ‘서리’처럼 자디잔 ‘싸락눈’이라 햇볕이 나면 곧장 녹아버리는 눈이다.

김수업/우리말교육대학원장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54219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200831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15743
400 터키말과 튀르크어파 바람의종 2007.11.08 6609
399 사발통문 바람의종 2007.11.08 9035
398 줄여 쓰는 말 바람의종 2007.11.07 10902
397 복수 표준어 바람의종 2007.11.07 7230
» 는개와 느리 바람의종 2007.11.07 10550
395 사면초가 바람의종 2007.11.07 8023
394 책보따리·책보퉁이 바람의종 2007.11.06 8591
393 칼미크말 바람의종 2007.11.06 7435
392 부부 금실 바람의종 2007.11.06 7908
391 낚시질 바람의종 2007.11.05 7197
390 지역 언어 바람의종 2007.11.05 6998
389 ‘뛰다’와 ‘달리다’ 바람의종 2007.11.05 5700
388 봉두난발 바람의종 2007.11.05 10585
387 야단벼락/혼벼락 바람의종 2007.11.04 8317
386 언어 보존 바람의종 2007.11.04 7200
385 여성상과 새말 바람의종 2007.11.04 9035
384 밀랍인형 바람의종 2007.11.04 10848
383 금과 줄 바람의종 2007.11.03 5912
382 쉽게 찾기 바람의종 2007.11.03 6526
381 대증요법 바람의종 2007.11.03 6096
380 미혼남·미혼녀 바람의종 2007.11.02 9923
379 만주말 바람의종 2007.11.02 7111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32 133 134 135 136 137 138 139 140 141 142 143 144 145 146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