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3.12.05 14:28

상석

조회 수 1130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상석

 신통하게도 같은 모양의 의자이지만 어디가 상석이고 어디가 말석인지 금세 안다. 문이나 통로에서 먼 쪽. 등을 기댈 수 있는 벽 쪽. 긴 직사각형 모양의 회의실에서 윗사람은 짧은 길이의 변 중앙에 놓인 의자에 앉는다. 평지인데도 상석(上席), 윗자리를 귀신같이 안다. 왜 그런가?

우리는 ‘힘’이나 ‘권력’을 ‘위-아래’라는 공간 문제로 이해한다. 힘이 있으면 위를 차지하고 힘이 없으면 아래에 찌그러진다. 이런 감각은 우연히 생긴 게 아니다. 숱하게 벌어지는 상황을 목격하면서 몸에 새겨진 것이다. 금메달을 딴 선수가 올라서는 시상대는 은메달, 동메달 선수보다 높다. 경복궁 근정전의 왕좌는 계단 위에 놓여 있다. 선생은 교단 위에 올라가 학생들을 굽어보며 가르친다. 지휘자가 오르는 지휘석도 연주자들보다 높다. 현실세계의 물리적 공간 배치는 사회적 권력과 지배력을 실질적으로 표현한다.

말에도 그대로 녹아 있다. ‘윗사람, 윗대가리, 상관, 상사’와 ‘아랫사람, 아랫것, 부하’(그러고 보니 ‘하청업체’도 있군). 위아래 구분은 동사에도 반영되어 있다. 명령을 내리고, 말 안 듣는 부하는 찍어 누른다. 아랫사람은 명령을 받들고, 맘에 안 드는 상사는 치받는다. ‘상명하복’은 관료사회의 철칙이다. 사진에서 상석은 맨 앞줄 가운데 자리이다. 결혼식에서 신랑신부가, 환갑잔치에서 어르신이 자리 잡는 바로 그곳. 쿠데타 성공 기념사진에서 살인마 전두환이 앉았던 그 자리.

‘상석’은 크고 작은 권력관계를 끊임없이 시각적으로 나타내고 싶어 하는 인간 욕망의 그림자이다. 하지만 인간에겐 상석이 만드는 위계를 거역하는 힘도 있다. 상석에 앉지도, 중심에 서지도 않는 힘. 상석을 불살라 버리는 힘도 있다. (어딘가엔.)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48474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94914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09858
3392 가짜와 인공 風文 2023.12.18 1076
3391 '넓다'와 '밟다' 風文 2023.12.06 1318
3390 드라이브 스루 風文 2023.12.05 1308
» 상석 風文 2023.12.05 1130
3388 흰 백일홍? 風文 2023.11.27 1610
3387 '마징가 Z'와 'DMZ' 風文 2023.11.25 1267
3386 반동과 리액션 風文 2023.11.25 1217
3385 ‘개덥다’고? 風文 2023.11.24 1387
3384 내색 風文 2023.11.24 1001
3383 '밖에'의 띄어쓰기 風文 2023.11.22 1197
3382 몰래 요동치는 말 風文 2023.11.22 1083
3381 군색한, 궁색한 風文 2023.11.21 1111
3380 주현씨가 말했다 風文 2023.11.21 1255
3379 ‘가오’와 ‘간지’ 風文 2023.11.20 1211
3378 까치발 風文 2023.11.20 1209
3377 쓰봉 風文 2023.11.16 1104
3376 부사, 문득 風文 2023.11.16 1017
3375 저리다 / 절이다 風文 2023.11.15 1198
3374 붓다 / 붇다 風文 2023.11.15 1236
3373 후텁지근한 風文 2023.11.15 1304
3372 조의금 봉투 風文 2023.11.15 1191
3371 본정통(本町通) 風文 2023.11.14 1269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