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2.05.12 11:17

영어 공용어화

조회 수 1325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영어 공용어화

2000년 초 우리가 외환위기의 수렁에서 가까스로 헤어나오고 있을 때, 일본에서는 당시 오부치 게이조 총리의 개인 자문역인 ‘21세기 일본의 구상’이라는 모임에서 21세기 일본의 정책 방향을 제안했는데 거기에 영어를 제2의 공용어로 삼자는 의견을, 국민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전제 아래, 제안하고 있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그 반응은 일본보다 한국 사회에서 더 뜨거웠다.

보수적이기로 이름난 한 신문이 이를 크게 보도하자 뒤이어 어슷비슷한 신문들이 과열된 기사와 르포를 내보냈다. 당시의 기사 제목들을 살펴보자. “여덟 살도 늦다”, “영어의 바다에 빠뜨려라”, “영어 방송 채널 늘려 ‘귀’ 틔게 해야” 등등의 선정적인 보도가 넘쳐났다. 논점도 일본처럼 영어를 제2의 공용어로 삼자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공용어로 삼는 것이 낫다는 어느 유명한 소설가의 주장을 대변하기도 하였다.

그 이후 우리에게는 영어 강풍이 계속 어왔다. 대학에서는 전공을 불문하고 노골적으로 교수와 강사들에게 영어 강의를 강권한다. 취학 전에 영어유치원에 아이들을 보낸다. 어떤 점에서 본다면 사실상 사회 일부 영역에서는 영어의 공용어화가 조용히 진행 중인 셈이다. 그러는 중에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영어를 잘하는 것을 모든 공적인 능력의 첫째 기준으로 생각하는 습관에 익숙해져 버렸다.

지금 우리는 이렇게 향상된 영어 능력으로 미국의 ‘미치광이 전략’에 맞서 힘겹게 협상을 해야 한다. 다른 한편 당시 세웠던 영어마을의 거듭된 적자를 묵묵히 감당해내야 한다. 그러면서 또 이번 노벨 문학상에 한국 작가의 이름은 빠졌고 다른 아시아계가 뽑힌 것을 아쉬워하는 한숨소리가 들린다. 도대체 우리는 그동안 무슨 짓을 하며 시간을 보낸 것인가?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49698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96192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11198
3194 번번이 / 번번히 바람의종 2012.05.07 14618
3193 택도 없다. 바람의종 2010.08.15 14613
3192 십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난다 바람의종 2009.05.01 14585
3191 훈민정음 반포 565돌 바람의종 2011.11.20 14576
3190 ‘가로뜨다’와 ‘소행’ 바람의종 2010.07.09 14560
3189 넉넉지/넉넉치 바람의종 2009.03.17 14560
3188 뇌살, 뇌쇄 / 다례, 차례 / 금슬, 금술, 금실 / 귀절, 구절 바람의종 2010.03.24 14508
3187 어깨 넘어, 어깨너머 바람의종 2009.08.01 14466
3186 널빤지, 널판지, 골판지 바람의종 2009.09.23 14456
3185 진이 빠지다 바람의종 2008.01.30 14452
3184 함께하다/ 함께 하다, 대신하다/ 대신 하다 바람의종 2009.03.29 14446
3183 담갔다, 담았다, 담그다 바람의종 2010.11.10 14434
3182 할려고? 하려고? 바람의종 2010.07.25 14418
3181 괄괄하다 風磬 2006.09.29 14416
3180 겸연쩍다, 멋쩍다, 맥쩍다 바람의종 2009.07.25 14408
3179 각둑이, 깍둑이, 깍두기, 깍뚜기 바람의종 2009.11.09 14373
3178 오락·문화용어 바람의종 2010.03.19 14371
3177 옛부터? 바람의종 2010.03.19 14368
3176 하꼬방 바람의종 2011.11.30 14362
3175 며늘아기, 며늘아가 바람의종 2010.08.06 14359
3174 쇠다와 쉬다 바람의종 2010.04.17 14355
3173 십상이다 바람의종 2010.08.11 14349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