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2.09.21 14:41

헤라시보리

조회 수 17718 추천 수 5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헤라시보리

“그러니까 데나우시 안 생기게 시야게 잘해서 오사마리 합시다.” 방송 제작 현장에서 들을 수 있는 말이다. 그 바닥 전문가가 아니면 뜻을 헤아리기 어려운 이런 말을 풀어내기 위해 방송 관계자들이 의기투합한 적이 있다. ‘어쩔 수 없이’ 쓰고 있는 일본어 잔재를 다듬기 위해서였다. 국어학을 전공한 박사와 아나운서, 방송 세트를 만드는 현장 실무자가 머리를 맞대고 매주 하나씩 다듬어 나가자고 발 벗고 나섰던 게 벌써 몇 년 전의 일이다. 건설 현장, 영화 촬영장에서도 이와 비슷한 움직임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지난주 영화 <피에타> 속의 ‘시보리’를 곱씹으며 공구·공작 업계와 의상·봉제 업계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여태 쓰이고 있는 일본 용어 찌꺼기가 다양함을 짚어보았다. ‘빠우’, ‘로구로’, ‘스카시’, ‘헤라시보리’ 따위가 빠질 수 없는 보기이다. ‘헤라시보리’를 인터넷 누리집에 소개한 한 업체의 설명은 이렇다. “‘헤라(へら, 구둣주걱)’처럼 길쭉한 막대기를 지렛대처럼 사용해 선반으로 둥근 기물을 가공하는 작업. 트로피, 종, 밥공기, 화분 등을 만드는 일로 100%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그 분야에서는 전문용어처럼 쓰지만 일반인에게는 낯선 표현이기에 따로 풀어주었을 것이다.

금속이나 돌의 표면을 매끄럽게 마무리하는 기계나 작업인 ‘빠우’는 ‘광내기’, 목기나 가구 다리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기구인 ‘로구로’는 ‘돌림판’, 실톱으로 무늬를 내는 작업을 뜻하는 ‘스카시’는 ‘실톱질’로 이미 다듬은 표현이다.(국어순화용어자료집, 1997) 현장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일본어투 용어를 모두 걷어낼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비계(←아시바), 줄(←야스리), 놋쇠(←신츄)처럼 번듯한 우리말이 있으면 마땅히 제자리 찾아 써야 한다. 글머리에 내보인 말은 그래서 이렇게 다듬어야 한다. “그러니까 뜯어고치는 일 안 생기게 마무리 잘해서 작업 끝냅시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60979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207514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22428
3326 아줌마들 風文 2022.01.30 1420
3325 올림픽 담론, 분단의 어휘 風文 2022.05.31 1420
3324 산막이 옛길 風文 2023.11.09 1421
3323 군색한, 궁색한 風文 2023.11.21 1425
3322 다만, 다만, 다만, 뒷담화 風文 2022.09.07 1426
3321 주어 없는 말 風文 2021.11.10 1429
3320 왜 벌써 절망합니까 - 4. 이제 '본전생각' 좀 버립시다 風文 2022.02.06 1430
3319 물타기 어휘, 개념 경쟁 風文 2022.06.26 1431
3318 일본이 한글 통일?, 타인을 중심에 風文 2022.07.22 1435
3317 좋은 목소리 / 좋은 발음 風文 2020.05.26 1436
3316 그림과 말, 어이, 택배! 風文 2022.09.16 1436
3315 조의금 봉투 風文 2023.11.15 1436
3314 비계획적 방출, 주접 댓글 風文 2022.09.08 1437
3313 왠지/웬일, 어떻게/어떡해 風文 2023.06.30 1438
3312 국어와 국립국어원 / 왜 風文 2022.08.29 1439
3311 거짓말과 개소리, 혼잣말의 비밀 風文 2022.11.30 1440
3310 울면서 말하기 風文 2023.03.01 1441
3309 법과 도덕 風文 2022.01.25 1442
3308 동무 생각, 마실 외교 風文 2022.06.14 1442
3307 온실과 야생, 학교, 의미의 반사 風文 2022.09.01 1442
3306 용찬 샘, 용찬 씨 風文 2023.04.26 1442
3305 ‘짝퉁’ 시인 되기, ‘짝퉁’ 철학자 되기 風文 2022.07.16 1443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