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4.03.27 06:22

갑질

조회 수 1994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갑질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에 등장하는 말 중에 ‘갑질’이 있다. 비교적 최근에 생겨난 말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약자인 상대에게 하는 부당한 행위’를 가리킨다. 이 말은 차례나 등급을 매길 때 첫째를 이르는 ‘갑’에 접미사 ‘질’이 결합해서 만들어졌다. 보통 계약서를 쓸 때 계약의 두 당사자를 편의상 ‘갑, 을’로 칭하게 되는데, 이때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쪽이 ‘갑’이 된다. 이런 관습으로부터 ‘갑’에는 권력이나 지위가 높은 쪽, ‘을’에는 낮은 쪽의 의미가 덧씌워지게 되었다. 여기에 ‘질’이 붙어 새말이 만들어진 게 흥미롭다. ‘질’이 붙은 말은 대개 부정적인 뜻으로 쓰인다. 물론 ‘가위질’이나 ‘바느질’처럼 부정적인 뜻 없이 단순히 그 도구를 사용해서 하는 일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직업이나 직책, 또는 사람이 하는 행위에 ‘질’이 붙을 때는 그 일을 비하하거나, 또는 그 일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가치 평가가 덧붙는다.

비단 ‘도둑질’ ‘싸움질’ ‘고자질’ 같이 본래 나쁜 일을 가리킬 때만이 아니다. 대표적인 예로 ‘선생질’이 있다. 학생들을 교육하는, 존중 받는 직업에 ‘질’이라는 접미사가 결합됨으로써 그 일을 하찮게 여기거나 낮잡는 상황에서만 쓰는 말이 돼버린다. ‘전화질’이나 ‘자랑질’도 마찬가지다. 쓸 데 없이 자주 전화를 하거나 지나치게 자랑을 많이 하는 경우를 비난하는 의미로만 쓰인다. 그런데 북한말에는 ‘질’에 그런 비하의 뜻이 없다고 한다. 새터민들 중에는 ‘선생질’을 ‘교사로서의 직분’이라는 평범한 의미로 썼다가 남한 사람들과 소통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사전에 없지만 ‘갑질’이란 말에는, 그런 행동이 해서는 안 될 ‘못된 짓’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56131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202715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17663
3434 한글 맞춤법 강의 - 박기완 윤영환 2006.09.04 26285
3433 우리말 속의 일본말 찌꺼기들 風磬 2006.09.07 16128
3432 맞고요, 맞구요 風磬 2006.09.09 16621
3431 에요, 예요 風磬 2006.09.09 20054
3430 요, 오 風磬 2006.09.09 20345
3429 개개다(개기다) 風磬 2006.09.13 16144
3428 개차반 風磬 2006.09.14 16217
3427 겻불 風磬 2006.09.14 16130
3426 괴발개발(개발새발) 風磬 2006.09.14 21224
3425 게거품 風磬 2006.09.14 19616
3424 고명딸 風磬 2006.09.16 15751
3423 고뿔 風磬 2006.09.16 15596
3422 고수레 風磬 2006.09.18 20682
3421 고주망태 風磬 2006.09.21 14403
3420 곤죽 風磬 2006.09.29 12419
3419 괄괄하다 風磬 2006.09.29 14539
3418 구년묵이(구닥다리) 風磬 2006.10.10 15186
3417 꼬투리 風磬 2006.10.10 13717
3416 나리 風磬 2006.10.10 16962
3415 남세스럽다 風磬 2006.10.30 11086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