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3.11.11 19:25

귀 잡수시다?

조회 수 1084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귀 잡수시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이라고 불릴 만큼 예절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런 태도가 언어에도 반영돼 우리말에는 높임법이 매우 발달해 있다. 문장의 주체를 높이기 위해 ‘시’를 넣어 말하거나, 말을 듣는 상대에 따라 ‘했니?’, ‘했습니까?’처럼 어미를 다르게 선택해서 말한다. ‘진지, 생신, 잡수시다, 주무시다’처럼 윗사람에게만 쓰는 높임 어휘가 따로 존재하기도 한다.

그런데 때로는 높임말을 잘못 사용해서 곤란을 겪기도 한다. 흔히 틀리는 게 ‘귀 잡수시다’인데, 이게 잘못인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얼마 전에도 “우리 할아버지는 귀가 잡수셔서 말을 잘 못 알아들으세요”라고 말하는 청년을 보았다. ‘귀가 먹으셨다’라고 해야 할 것을 어른에게 ‘먹었다’고 하기가 어려워서 ‘귀가 잡수셨다’고 한 것이다.

‘귀먹다’의 ‘먹다’는 ‘밥을 먹다’의 ‘먹다’와는 다른 말이다. 이때의 ‘먹다’는 ‘막히다’의 뜻을 지닌 옛말에서 비롯된 것으로 ‘귀나 코가 막혀서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게 되다’는 뜻이다. 이 ‘먹다’는 코가 막힌 경우에도 쓸 수 있는데, 감기에 걸려 코맹맹이 소리를 낼 때 ‘코 먹은 소리’라고 하는 게 그런 예이다. 갑자기 귀가 막힌 것처럼 소리가 잘 안 들리거나 체한 것같이 가슴이 답답할 때 쓰는 ‘먹먹하다’나, 앞뒤가 꽉 막혀 답답한 사람을 가리킬 때 쓰는 ‘먹통’ 이 모두 이 ‘먹다’와 관련이 있는 말이다.

‘귀 잡수셨다’는 말은 동물의 귀를 음식으로 섭취했다는 뜻이 되므로 ‘귀먹다’의 높임말이 될 수 없다. 어른에 대해서 쓸 때에는 ‘귀가 먹으셨다’고 하면 된다. 그래도 어른께 ‘먹으셨다’고 말하기가 영 찜찜하다면 ‘귀가 어두우시다’나 ‘귀가 잘 안 들리신다’로 표현하면 될 것이다.

-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40713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87133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02257
66 성적이 수치스럽다고? 風文 2023.11.10 1125
65 피동형을 즐기라 風文 2023.11.11 914
» 귀 잡수시다? 風文 2023.11.11 1084
63 기역 대신 ‘기윽’은 어떨까, 가르치기도 편한데 風文 2023.11.14 1108
62 본정통(本町通) 風文 2023.11.14 1058
61 조의금 봉투 風文 2023.11.15 938
60 후텁지근한 風文 2023.11.15 1035
59 붓다 / 붇다 風文 2023.11.15 1084
58 저리다 / 절이다 風文 2023.11.15 1025
57 부사, 문득 風文 2023.11.16 859
56 쓰봉 風文 2023.11.16 906
55 까치발 風文 2023.11.20 1039
54 ‘가오’와 ‘간지’ 風文 2023.11.20 1021
53 주현씨가 말했다 風文 2023.11.21 1058
52 군색한, 궁색한 風文 2023.11.21 922
51 몰래 요동치는 말 風文 2023.11.22 853
50 '밖에'의 띄어쓰기 風文 2023.11.22 1021
49 내색 風文 2023.11.24 828
48 ‘개덥다’고? 風文 2023.11.24 1165
47 반동과 리액션 風文 2023.11.25 991
46 '마징가 Z'와 'DMZ' 風文 2023.11.25 1088
45 흰 백일홍? 風文 2023.11.27 1232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42 143 144 145 146 147 148 149 150 151 152 153 154 155 156 Next
/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