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3.04.19 06:10

내연녀와 동거인

조회 수 1211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내연녀와 동거인

가끔 연락하는 <한겨레> 기자가 있다. 말을 주제로 기자끼리 토론이 붙나 보더라. 말에 대한 감각이 천차만별이니 토론이 자못 뜨거워 보였다. ‘기자들이 말에 대한 고민이 많군’ 하며 즐거워한다. ‘내기’ 를 거는지는 모르지만, 급기야 생각 없이 사는 나한테까지 질문을 한다. 내 대답은 늘 ‘어정쩡’ 하다. ‘이렇게 볼 수도, 저렇게 볼 수도 있지 않겠소이까?’

며칠 전엔 아트센터나비 관장 노소영씨가 티앤씨(T&C)재단 이사장 김희영씨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김씨를 에스케이(SK) 회장 최태원씨의 ‘내연녀’ 라 할지 ‘혼외 동거인’ 이라 할지로 논쟁이란다.

상식적(?) 으로 보면, ‘내연녀 / 내연남’은 개인의 사생활을 매도하고 편견을 조장하는 말이니 ‘혼외 동거인’ 이라 쓰는 게 맞다고 할 것이다. 흥미롭게도 연락해온 기자는 노소영씨 입장에 주목했다. 노씨가 소송을 한 데에는 두 사람의 내연 관계에서 받은 정신적 상처가 영향을 끼쳤을 텐데, 김씨에게 ‘혼외 동거인’(‘동거녀’ 도 아닌) 이란 중립적인 표현을 쓰는 게 온당한가? 은밀함, 비도덕성, 부적절함 같은 말맛이 풍기는 ‘내연녀’ 란 말을 써야 ‘본처’의 분노를 조금이나마 담을 수 있지 않겠냐는 마음일 듯. 이렇게 볼 수도, 저렇게 볼 수도 있겠다.

나는 다른 데에 눈길이 갔다. ‘내연녀’ 와 ‘혼외 동거인’ 사이에서 새삼 고민하게 된 계기가 뭘까 하는 것. 유사 이래로 혼외 연애 범죄는 끊임이 없었다. 그걸 다룬 기사는 한결같이 ‘내연녀 / 내연남 고소 / 협박 / 폭행 / 살해’ 였다. 그렇다면 혹시 고결한 재벌가의 연애사를 다루다 보니 비로소 번민이 시작된 건 아닐까.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53297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99870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14839
3304 마그나 카르타 風文 2022.05.10 1274
3303 새로운 한자어, 이름과 실천 風文 2022.06.18 1275
3302 국어와 국립국어원 / 왜 風文 2022.08.29 1275
3301 다만, 다만, 다만, 뒷담화 風文 2022.09.07 1275
3300 사저와 자택 風文 2022.01.30 1279
3299 내일러 風文 2024.01.03 1280
3298 예민한 ‘분’ 風文 2023.05.29 1281
3297 울면서 말하기 風文 2023.03.01 1282
3296 국가 사전을 다시?(2,3) 주인장 2022.10.21 1283
3295 아줌마들 風文 2022.01.30 1284
3294 말의 미혹 風文 2021.10.30 1285
3293 주시경, 대칭적 소통 風文 2022.06.29 1285
3292 조의금 봉투 風文 2023.11.15 1285
3291 말하는 입 風文 2023.01.03 1286
3290 피동형을 즐기라 風文 2023.11.11 1286
3289 말의 바깥, 말의 아나키즘 風文 2022.08.28 1288
3288 용찬 샘, 용찬 씨 風文 2023.04.26 1288
3287 거짓말과 개소리, 혼잣말의 비밀 風文 2022.11.30 1289
3286 꼬까울새 / 해독, 치유 風文 2020.05.25 1290
3285 ‘선진화’의 길 風文 2021.10.15 1292
3284 야민정음 風文 2022.01.21 1293
3283 왕의 화병 風文 2023.11.09 1295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