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3.03.01 06:25

울면서 말하기

조회 수 986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울면서 말하기

울면서 말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부럽다. 나는 울면서 말을 하지 못한다.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입이 실룩거리며 울음이 목구멍에 닿으면, 하고 싶던 말을 도무지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다. 첫소리부터 컥, 하는 울음소리에 눌려 뭉개진다. 울면서 뱉은 말을 꼽아보면 ‘엄마, 아버지, 어휴, 이게 뭐야, 어떡해.’ 정도. 온전한 문장이 없다. 그러니 울면서 ‘조곤조곤’ 말하는 사람이 부러울 수밖에. 울음을 배경음악으로 깔고 하는 말이니 듣는 이는 어찌 녹아내리지 않겠는가.

아직 동지를 찾지 못했다. 우는 사람한테 가서 ‘할 말이 있는데 우느라 못 하는 거냐’고 묻는 건 너무 냉정하다. 말년에 ‘말없이’ 수시로 울먹거렸던 아버지가 제일 의심스럽지만, 이게 유전적 문제인지는 영원히 미궁이다.

할 말이 있어 말을 꺼냈는데, 울음이 나와 말을 잇지 못한다는 게 얼마나 치명적인가. 상대는 답답해하지만, 말을 할 수 없으니 이런 낭패도 없다. 어떤 말엔 감정의 손가락이 달려 울음의 문고리를 잡아당긴다. 삶에 대한 옹호, 인간적인 것에 대한 그리움, 추억 같은 것. 종잡을 수가 없다.

지금으로선, 실컷 울지도, 실컷 말하지도 못한, 다시 말해 어디 한곳에 온몸을 던져보지도, 온몸을 빼보지도 못한, 어정쩡한 삶 때문 아닐까 싶다. 힘껏 우는 근육도, 힘껏 말하는 근육도 키우지 못한 이 허약함. 있는 힘을 다해 진심을 밀어붙이는 간절함의 부족 같은 것. 울면서 말하기가 어렵다면, 슬픔이든 분노든 아픔이든 기쁨이든 온 힘을 다해 울어보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그깟 말, 없으면 어떠랴.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41789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88196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03386
3278 생각보다, 효녀 노릇 風文 2022.09.02 978
3277 웃어른/ 윗집/ 위층 風文 2024.03.26 978
3276 개념의 차이, 문화어 風文 2022.06.13 979
3275 말과 절제, 방향과 방위 風文 2022.07.06 983
3274 더(the) 한국말 風文 2021.12.01 985
» 울면서 말하기 風文 2023.03.01 986
3272 말의 바깥, 말의 아나키즘 風文 2022.08.28 989
3271 있다가, 이따가 風文 2024.01.03 989
3270 왕의 화병 風文 2023.11.09 991
3269 북혐 프레임, 인사시키기 風文 2022.05.30 992
3268 가던 길 그냥 가든가 風文 2024.02.21 994
3267 영어 열등감, 몸에 닿는 단위 風文 2022.04.27 998
3266 말의 세대 차 風文 2023.02.01 998
3265 김치 담그셨어요? 風文 2024.02.08 998
3264 말의 평가절하 관리자 2022.01.31 999
3263 성인의 외국어 학습, 촌철살인 風文 2022.06.19 999
3262 비계획적 방출, 주접 댓글 風文 2022.09.08 1001
3261 공공언어의 주인, 언어학자는 빠져! 風文 2022.07.27 1003
3260 바람을 피다? 風文 2024.01.20 1003
3259 태극 전사들 風文 2022.01.29 1006
3258 ○○노조 風文 2022.12.26 1010
3257 용찬 샘, 용찬 씨 風文 2023.04.26 1010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56 Next
/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