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3.02.01 09:39

말의 세대 차

조회 수 1479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말의 세대 차

말의 세대 차를 걱정하는 사람을 자주 만난다. ‘못 알아듣겠다.’ ‘이러다가 소통이 안 될까봐 걱정이다.’ ‘세대 차를 줄이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라고 말하기도 한다. 걱정도 팔자다. 노력하지 말라. 가끔은 뭘 하는 것보다 안 하는 게 나을 때가 있다. 세대 차를 줄이려는 노력은 허황되고 부질없다. 세대 차가 없는 말의 세계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노화 저지’(안티에이징)가 시대적 과제라지만, 가는 세월 그 누가 잡을 수가 있겠나.

기성세대는 버릇처럼 젊은이들의 말을 달가워하지 않지만, 줄임말이나 신조어가 젊은이들의 전유물이기만 한 건 아니다. 새로운 말은 세대를 불문하고 어디서든 만들어진다. 누가 쓰느냐에 따라 평가를 달리할 뿐이다. 공식어나 격식체를 쓰는 공간에서도 줄임말이나 신조어를 빈번하게 쓴다. 그런데 정치에 무심한 사람에게는 ‘외통위, 법사위, 과기정통부, 윤핵관’이 생소할 수밖에 없다. 국가재정사업에 무심하면 ‘예타 면제’란 말을 모른다. 입시에 무심하면 ‘학종, 사배자, 지균’이 뭔지 모른다. 시골 농부는 ‘법카’를 모른다(알아 뭐 할꼬). 어떤 사람들에겐 못 알아듣는 말인데도, 아무도 문제 삼지 않는다. 이 공간을 차지한 사람들에게 친숙한 말이면 ‘모두가 쓰는 말’로 가정한다. 그 공간 밖에 있는 사람들의 말만 불온시한다. 편파적이다.

우리는 모든 장소와 시간에 존재할 수 없다. 말은 장소성을 갖는다. 장소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새로운 말을 만들어낸다. 장소성을 갖지 않는, 장소성이 표시되지 않는, 중립적인 척하는 언어가 더 의심스럽다. 차이를 줄이기보다 차이를 밀어붙이자.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64059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210671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25371
3238 왜 벌써 절망합니까 - 벤처대부는 나의 소망 風文 2022.05.26 1610
3237 말의 적 / 화무십일홍 風文 2023.10.09 1610
3236 마라톤 / 자막교정기 風文 2020.05.28 1611
3235 3인칭은 없다, 문자와 일본정신 風文 2022.07.21 1612
3234 마녀사냥 風文 2022.01.13 1613
3233 부동층이 부럽다, 선입견 風文 2022.10.15 1614
3232 기역 대신 ‘기윽’은 어떨까, 가르치기도 편한데 風文 2023.11.14 1614
3231 아주버님, 처남댁 風文 2024.01.02 1618
3230 마그나 카르타 風文 2022.05.10 1619
3229 세계어 배우기 風文 2022.05.11 1620
3228 대통령과 책방 風文 2023.05.12 1620
3227 순직 風文 2022.02.01 1623
3226 아니오 / 아니요 風文 2023.10.08 1625
3225 말로 하는 정치 風文 2022.01.21 1627
3224 어떻게 토론할까, 질문 안 할 책임 風文 2022.07.24 1629
3223 뉴 노멀, 막말을 위한 변명 風文 2022.08.14 1629
3222 반동과 리액션 風文 2023.11.25 1629
3221 외부인과 내부인 風文 2021.10.31 1633
3220 국민께 감사를 風文 2021.11.10 1635
3219 ‘가오’와 ‘간지’ 風文 2023.11.20 1636
3218 적과의 동침, 어미 천국 風文 2022.07.31 1637
3217 정치와 은유(2, 3) 風文 2022.10.13 1637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