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155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헛스윙, 헛웃음, 헛기침의 쓸모

‘헛걸음’ ‘헛소리’ 따위에 붙는 접두사 ‘헛-’은 한자 ‘빌 허(虛)’에서 왔다. 사전에선 ‘이유 없다’거나 ‘보람 없다’는 뜻이 덧붙는다고 새기고 있는데, ‘가짜, 잘못, 거짓’의 뉘앙스가 더 강하다. ‘나이를 헛먹다, 헛것을 보다, 헛똑똑이’ 같은 말이 그렇다. 매사를 투입 대비 산출로 생각하는 것이 이 시대의 행동강령이다. 적게 투입하고도 목표를 달성하면 박수를 받는다. ‘헛-’이 붙은 말들은 비능률, 비생산적인 상황을 지목한다. ‘헛-’이 빠지면 실속 있고 원하던 게 이뤄진 것이겠지. 힘을 썼으면 그에 맞는 성과를 얻어야 하리. ‘헛심(힘)’ 쓸 바엔 차라리 가만히 있으라. 눈에 보이는 성과(아웃풋)가 없는 일은 헛수고. 장사도 그렇고 배움도 그렇다. 돈 안 되는 일은 그만둬.

하지만 헛짓이 쓸모없지만은 않다. 헛기침은 민망함을 표시하거나 눈치주기의 용도로 요긴하다. 스산한 세상에서 헛웃음이라도 웃어야지. 상대의 턱에 주먹을 날리는 것보다 헛주먹질이 멀리 보면 낫다. 입덧이 심한 임신부의 헛구역질은 고통스러운데 그 고통의 시간이 흘러 아이가 태어난다. 3할대 야구선수도 얼마나 많은 헛스윙을 했겠는가.

우리 대부분은 원하는 걸 얻지 못하며 산다. 헛물만 켜는 경우가 허다하다. 삶은 헛바퀴 돌듯 하고, 걸음을 헛디뎌 넘어진다. 그래도 지금 당장의 헛고생이 어떻게 굴절되어 나에게 쌓일지 모른다. 풍진세상에 살지만, 그래도 더 평화롭고 평등한 세상은 꼭 온다는 헛꿈이라도 꿔야 견디지. 그러니 헛되어 보이는 일도 잠자코 할 수밖에. 열매를 맺지 못하는 헛꽃도 예쁘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1. No Image notice by 바람의종 2006/09/16 by 바람의종
    Views 54289 

    ∥…………………………………………………………………… 목록

  2.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3. No Image notice by 風磬 2006/09/09 by 風磬
    Views 215812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4. No Image 15Nov
    by 風文
    2021/11/15 by 風文
    Views 1546 

    지명의 의의

  5. No Image 14Apr
    by 風文
    2023/04/14 by 風文
    Views 1545 

    어쩌다 보니

  6. No Image 25Oct
    by 風文
    2022/10/25 by 風文
    Views 1540 

    ‘시끄러워!’, 직연

  7. No Image 26Mar
    by 風文
    2024/03/26 by 風文
    Views 1540 

    온나인? 올라인?

  8. No Image 22May
    by 風文
    2020/05/22 by 風文
    Views 1539 

    말다듬기 위원회 / 불통

  9. No Image 07Jan
    by 風文
    2022/01/07 by 風文
    Views 1538 

    할 말과 못할 말

  10. No Image 18Feb
    by 風文
    2024/02/18 by 風文
    Views 1533 

    배레나룻

  11. No Image 03Aug
    by 風文
    2022/08/03 by 風文
    Views 1532 

    괄호, 소리 없는, 반격의 꿔바로우

  12. No Image 18May
    by 風文
    2022/05/18 by 風文
    Views 1530 

    콩글리시

  13. No Image 06Dec
    by 風文
    2023/12/06 by 風文
    Views 1530 

    '넓다'와 '밟다'

  14. No Image 17Feb
    by 風文
    2024/02/17 by 風文
    Views 1530 

    내 청춘에게?

  15. No Image 17Apr
    by 風文
    2023/04/17 by 風文
    Views 1526 

    멋지다 연진아, 멋지다 루카셴코

  16. No Image 28May
    by 風文
    2020/05/28 by 風文
    Views 1525 

    마라톤 / 자막교정기

  17. No Image 25Apr
    by 風文
    2023/04/25 by 風文
    Views 1524 

    개양귀비

  18. No Image 14Jul
    by 風文
    2022/07/14 by 風文
    Views 1521 

    형용모순, 언어의 퇴보

  19. No Image 03Sep
    by 風文
    2022/09/03 by 風文
    Views 1518 

    국가 사전 폐기론, 고유한 일반명사

  20. No Image 04Jun
    by 風文
    2020/06/04 by 風文
    Views 1512 

    방방곡곡 / 명량

  21. No Image 18Oct
    by 風文
    2023/10/18 by 風文
    Views 1512 

    배운 게 도둑질 / 부정문의 논리

  22. No Image 29Jul
    by 風文
    2022/07/29 by 風文
    Views 1510 

    노랗다와 달다, 없다

  23. No Image 02Jun
    by 風文
    2023/06/02 by 風文
    Views 1503 

    ‘부끄부끄’ ‘쓰담쓰담’

  24. No Image 24Jun
    by 風文
    2022/06/24 by 風文
    Views 1501 

    한글의 약점, 가로쓰기 신문

  25. No Image 10May
    by 風文
    2022/05/10 by 風文
    Views 1500 

    성인의 세계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36 137 138 139 140 141 142 143 144 145 146 147 148 149 150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