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2.12.26 07:23

○○노조

조회 수 1359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노조

굳은살은 감각을 무디게 만든다. 말이 굳으면 대상을 별생각 없이 일정한 이미지로 자동 해석하게 한다. 한국 사회의 반노동 반노조 정서는 말 속에 뿌리 깊이 박혀 있다. ‘노조’라는 단어를 읊조려 보라. 머릿속에 어떤 이미지들이 떠오르나? ‘머리띠, 구호, 삭발, 파업’이 아닌, ‘친구, 맞잡은 손, 비를 피할 큰 우산’ 같은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노조’의 빈자리를 채우는 말을 떠올려 보라. 예전엔 ‘어용노조, 민주노조’ 정도였다면, 지금은 ‘강성노조, 귀족노조’라는 말이 떠오른다. 최근엔 ‘부패노조’라는 표현도 등장. 진실을 감추고 선입견을 심어주는 데 성공한 말들이다.

‘귀족노조’라는 말은 의미가 이중적인 만큼 효과가 좋다. 이 말은 월급과 복지가 좋은 일부 대기업 노조를 지칭할 수도 있지만, 노조 전체를 특권층으로 싸잡아 매도할 수도 있다(영어의 ‘노동 귀족’(labor aristocracy)이란 말은 특권화되고 보수화된 노조 간부를 뜻한다).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시달려도 노조가 있으면 무조건 ‘귀족노조’다. 노조를 꿈도 못 꾸는 노동자들에겐 노조 자체가 부러움과 상실감의 대상이다.

말은 투쟁만큼 중요하다. 정부와 언론의 악의적 선동이 넘치지만, 우리도 새로운 말을 발명해야 한다. 마치 칫솔처럼, 손난로처럼, 이불처럼 가깝고 친근한 느낌을 주는 수식어를 찾아내어 꾸준히 써야 한다. 그러니, 송년 모임에 가는 차 안에서라도 ‘노조’의 꾸밈말로 어떤 게 좋을지 생각해 봄이 어떨까. 나는 아직까진 문장 하나만 생각날 뿐. ‘노조는 부패한 게 아니라 부족한 것이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1. ∥…………………………………………………………………… 목록

    Date2006.09.16 By바람의종 Views52414
    read more
  2.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Date2007.02.18 By바람의종 Views198907
    read more
  3.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Date2006.09.09 By風磬 Views213895
    read more
  4. 우리와 외국인, 글자 즐기기

    Date2022.06.17 By風文 Views1319
    Read More
  5. 주현씨가 말했다

    Date2023.11.21 By風文 Views1319
    Read More
  6. 대통령과 책방

    Date2023.05.12 By風文 Views1320
    Read More
  7. 자막의 질주, 당선자 대 당선인

    Date2022.10.17 By風文 Views1322
    Read More
  8. 말끝이 당신이다, 고급 말싸움법

    Date2022.07.19 By風文 Views1324
    Read More
  9. 귀 잡수시다?

    Date2023.11.11 By風文 Views1324
    Read More
  10. 선정-지정 / 얼룩빼기 황소

    Date2020.05.15 By風文 Views1326
    Read More
  11. 어떻게 토론할까, 질문 안 할 책임

    Date2022.07.24 By風文 Views1327
    Read More
  12. 돼지의 울음소리, 말 같지 않은 소리

    Date2022.07.20 By風文 Views1329
    Read More
  13. 언어적 적폐

    Date2022.02.08 By風文 Views1331
    Read More
  14. 있다가, 이따가

    Date2024.01.03 By風文 Views1331
    Read More
  15. 말의 평가절하

    Date2022.01.31 By관리자 Views1333
    Read More
  16. 자백과 고백

    Date2022.01.12 By風文 Views1334
    Read More
  17. 말의 적 / 화무십일홍

    Date2023.10.09 By風文 Views1335
    Read More
  18. 태극 전사들

    Date2022.01.29 By風文 Views1336
    Read More
  19. 새말과 소통, 국어공부 성찰

    Date2022.02.13 By風文 Views1336
    Read More
  20. 적과의 동침, 어미 천국

    Date2022.07.31 By風文 Views1337
    Read More
  21. 말로 하는 정치

    Date2022.01.21 By風文 Views1339
    Read More
  22. ‘이고세’와 ‘푸르지오’

    Date2023.12.30 By風文 Views1341
    Read More
  23. 정치와 은유(2, 3)

    Date2022.10.13 By風文 Views1342
    Read More
  24. 식욕은 당기고, 얼굴은 땅기는

    Date2024.01.04 By風文 Views1342
    Read More
  25. 세로드립

    Date2021.10.15 By風文 Views1346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