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2.12.26 07:23

○○노조

조회 수 136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노조

굳은살은 감각을 무디게 만든다. 말이 굳으면 대상을 별생각 없이 일정한 이미지로 자동 해석하게 한다. 한국 사회의 반노동 반노조 정서는 말 속에 뿌리 깊이 박혀 있다. ‘노조’라는 단어를 읊조려 보라. 머릿속에 어떤 이미지들이 떠오르나? ‘머리띠, 구호, 삭발, 파업’이 아닌, ‘친구, 맞잡은 손, 비를 피할 큰 우산’ 같은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노조’의 빈자리를 채우는 말을 떠올려 보라. 예전엔 ‘어용노조, 민주노조’ 정도였다면, 지금은 ‘강성노조, 귀족노조’라는 말이 떠오른다. 최근엔 ‘부패노조’라는 표현도 등장. 진실을 감추고 선입견을 심어주는 데 성공한 말들이다.

‘귀족노조’라는 말은 의미가 이중적인 만큼 효과가 좋다. 이 말은 월급과 복지가 좋은 일부 대기업 노조를 지칭할 수도 있지만, 노조 전체를 특권층으로 싸잡아 매도할 수도 있다(영어의 ‘노동 귀족’(labor aristocracy)이란 말은 특권화되고 보수화된 노조 간부를 뜻한다).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시달려도 노조가 있으면 무조건 ‘귀족노조’다. 노조를 꿈도 못 꾸는 노동자들에겐 노조 자체가 부러움과 상실감의 대상이다.

말은 투쟁만큼 중요하다. 정부와 언론의 악의적 선동이 넘치지만, 우리도 새로운 말을 발명해야 한다. 마치 칫솔처럼, 손난로처럼, 이불처럼 가깝고 친근한 느낌을 주는 수식어를 찾아내어 꾸준히 써야 한다. 그러니, 송년 모임에 가는 차 안에서라도 ‘노조’의 꾸밈말로 어떤 게 좋을지 생각해 봄이 어떨까. 나는 아직까진 문장 하나만 생각날 뿐. ‘노조는 부패한 게 아니라 부족한 것이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1. No Image notice by 바람의종 2006/09/16 by 바람의종
    Views 52674 

    ∥…………………………………………………………………… 목록

  2.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3. No Image notice by 風磬 2006/09/09 by 風磬
    Views 214166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4. No Image 16Nov
    by 바람의종
    2011/11/16 by 바람의종
    Views 9237 

    가(價)

  5. 가 삘다

  6. No Image 05Nov
    by 바람의종
    2012/11/05 by 바람의종
    Views 8681 

    龜의 독음

  7. No Image 05Jul
    by 風文
    2020/07/05 by 風文
    Views 2114 

    鬱陶項(울돌목) / 공짜 언어

  8. 良衣·거리쇠

  9. No Image 08Jun
    by 風文
    2020/06/08 by 風文
    Views 1622 

    美國 - 米國 / 3M

  10. No Image 23Apr
    by 바람의종
    2010/04/23 by 바람의종
    Views 11637 

    ㅂ불규칙 활용

  11. No Image 07Mar
    by 바람의종
    2010/03/07 by 바람의종
    Views 8940 

    ㄹ는지

  12. No Image 26Dec
    by 風文
    2022/12/26 by 風文
    Views 1367 

    ○○노조

  13. No Image 26Oct
    by 風文
    2022/10/26 by 風文
    Views 1382 

    “힘 빼”, 작은, 하찮은

  14. “자식들, 꽃들아, 미안하다, 보고 싶다, 사랑한다, 부디 잘 가라”

  15. No Image 30Dec
    by 風文
    2023/12/30 by 風文
    Views 1196 

    “이 와중에 참석해 주신 내외빈께”

  16. No Image 16Jan
    by 風文
    2024/01/16 by 風文
    Views 1672 

    “영수증 받으실게요”

  17. No Image 31May
    by 風文
    2024/05/31 by 風文
    Views 50 

    “산따” “고기떡” “왈렌끼”

  18. No Image 31May
    by 風文
    2024/05/31 by 風文
    Views 30 

    “사겨라” “바꼈어요”

  19. No Image 11Oct
    by 바람의종
    2010/10/11 by 바람의종
    Views 6544 

    “돈이 남으십니다”

  20. No Image 06Mar
    by 風文
    2023/03/06 by 風文
    Views 1721 

    “김”

  21. No Image 16Mar
    by 바람의종
    2008/03/16 by 바람의종
    Views 5497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22. No Image 04Dec
    by 바람의종
    2009/12/04 by 바람의종
    Views 9530 

    ‘하므로’와 ‘함으로’

  23. No Image 04Jan
    by 風文
    2024/01/04 by 風文
    Views 1383 

    ‘폭팔’과 ‘망말’

  24. No Image 23Nov
    by 風文
    2022/11/23 by 風文
    Views 1868 

    ‘평어’를 쓰기로 함, 심심하다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39 140 141 142 143 144 145 146 147 148 149 150 151 152 153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