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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과 제주어

‘육지’와 멀리 떨어진 게 고유성을 지키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4·3사건으로 섬사람들은 고립되고 실어증에 걸린다. 제주어는 반란의 언어, 금지된 말. 참상에 대한 증언은 고사하고 제주 사람 티가 나는 말을 쓰는 것조차 꺼렸다. 육지에 나갈 때, 섬말은 바다에 내던져졌다.

2010년 유네스코는 제주어를 ‘사라져 가는 언어’ 5단계 중 4단계인 ‘아주 심각하게 위기에 처한 언어’로 등록했다. 4단계는 소멸 직전의 언어로, 노인들만 뜨문뜨문 쓴다는 뜻이다. 말의 표준화와 미디어의 전국화는 지역어의 위기와 소멸을 초래했다.

그럼에도 제주에는 제주어를 기록, 보존, 활성화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의 자긍심은 제주어를 기록하기 위한 별도의 ‘제주어 표기법’을 갖고 있는 데서도 찾을 수 있다. 육지에서는 진작에 버린 ‘아래아’(ㆍ)도 포함되어 있다. ‘아래아’는 만들어지고 얼마 안 지나 소릿값이 바뀌기 시작한 글자다. 단어의 첫소리에서는 주로 ‘ㅏ’로 바뀌고(ᄂᆞᆷ→남), 첫소리 아닌 자리에서는 ‘ㅡ, ㅓ, ㅜ’로 변했다(하ᄂᆞᆯ→하늘, 다ᄉᆞᆺ→다섯, ᄂᆞᄅᆞ→나루). 단어마다 달라지는 발음을 어떻게 표시할지가 숙제이지만, 제주어를 기록하는 사람들은 제주어에 ‘아래아’ 발음이 살아 있으며, 이것이 제주어의 독특함 가운데 하나라고 본다.

제주어가 복권되길 바란다. 딴 지역보다 조건이 좋다. 자율성을 갖춘 자치도이기도 하고, 제주어 복권을 위해 애써온 사람들이 도도하게 버티고 있다. 집과 학교에서, 말로도 글로도 끈질기게 써서 제주어가 하나의 ‘언어’로 활짝 피어나길 빈다. 제주어 만세!


허버허버

“반대말이 없는 단어를 찾고 있어.” 아는 시인이 말했다. 기발하고 ‘기특한’ 상상이다. 나는 그를 ‘기특하다’고 했는데, 아마 당신은 그가 나보다 어린가 보다고 짐작할 것이다(실은 한참 위). 반대로 한 학생이 나를 ‘똑똑하다’라고 평하는 걸 보고, 맞는 말인데도(!) 기분은 상했었다. 밴댕이 소갈머리 선생은 ‘맹랑한 녀석’이라며 찡얼댔다. 어디에도 안 나오지만 안다. ‘표독스럽다’, ‘교태를 부리다’, ‘꼬리를 치다’가 누구를 향하는지 다 안다.

허버허버. “‘남자’가 음식을 급하게 먹을 때 내는 소리나 그 모양”을 뜻하는 새말. ‘남자’만을 지목하기 때문에 남성혐오라는 항의가 잇달았다. 무심코 이 말을 쓴 유명 ‘남성’ 유튜버는 ‘저는 절대 절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며 고해성사를 하고, 카카오톡에서는 이 말이 들어간 이모티콘을 판매 중지하면서 남성혐오 의도가 없다는 해명을 했다.

이 말의 기원이 ‘남자’만을 지목할지는 몰라도, 계속 그러기는 힘들 것이다. 다른 흉내말을 봐도 남녀를 구분하지 않는다. ‘깔짝깔짝, 깨지락깨지락, 꼭꼭, 오물오물, 우걱우걱, 질겅질겅, 쩝쩝, 후루룩’(‘냠냠’ 정도가 ‘아이’를 가리킨다).

사람이 미우면 뭘 먹을 때가 제일 얄밉다. 게다가 ‘허버허버’ 먹는다면 더 얄밉다. ‘기분 나쁘니 쓰지 말라’는 건 손쉬운 반응이긴 한데 문화적이진 않다. 반대말을 만들거나 새 의미를 덧붙여서 그 표현이 갖는 효력을 회수하는 방식이 좀 더 ‘기특한’ 방식이 아닐지.

그래도 말에 상처받았다고 말하는 남성이 늘어난다는 건, 멀리 보았을 때는 좋은 징후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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