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2.05.23 13:46

과잉 수정

조회 수 1214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과잉 수정

사람들은 말을 하면서 이왕이면 멋있게 보이고 싶어 한다. 그러다 보니 그냥 편하게 말하면 될 것을 지나치게 규범을 의식하다가 오히려 이상한 말이 나온다. 이런 것을 ‘과잉 수정’이라고 한다. 특히 방언 사용자가 표준어를 말할 때, 외국어를 배울 때 자주 일어난다. 잘 모르는 지식으로 아는 척하다가도 일어날 수 있다.

카페에서 음료수를 주문한다. “파인[pain]주스요” 하고 파인(‘pine’)이라고 발음을 제대로 했는데, 상대방이 “아, 네. 파인[fain]주스요?” 하며 ‘fine’에 해당하는 발음을 하면 그 순간 그것이 더 정확할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 쉽다. 영어를 배울 때 그 부분이 늘 우리의 취약점이었기 때문이다. 외래어를 쓰면서, 우리의 ‘ㅍ’ 발음이 종종 영어의 ‘f’ 발음을 제대로 하지 못해 나오는 경우가 많다 보니 그런 과잉 발음을 하게 된다.

그러나 딱히 그런 이유만은 아닌 것 같다. 우리는 외국어 혹은 외래어를 사용할 때 유난히 ‘본토 발음’, 더 나아가 미국식 발음에 집착을 한다. 그러한 발음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 더 나은 교육을 받았고, 더 많은 지식을 가졌고, 또 그러하니까 사회적으로 유리한 지위에 있을 거라는 추측, 그리고 그에 대한 부담감이 작용하는 것 같다. 그래서 뷰티숍이 아니라 미국식 발음에 가까운 ‘뷰티샵’으로, ‘록 음악’도 ‘락’ 혹은 ‘툅’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외래어 표기의 안정성을 흔들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과잉 수정 행위의 근저에는 사회적 차별에 대한 공포가 숨어 있는 셈이다. 행여 나의 말투나 발음이 남들한테서 손가락질받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말을 이렇게 불편하게 만든다. 말은 소통만이 아니라 지위와 신분을 ‘슬며시’ 보여주는 기능도 하기 때문이다. 마치 옷차림이 재력을 과시하는 기능도 하듯이 말이다. 불평등한 사회는 말도 불편하게 만든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49178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95721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10632
3194 산전수전 바람의종 2007.07.19 8371
3193 삼우제 바람의종 2007.07.20 10721
3192 상극 바람의종 2007.07.20 6185
3191 선달 바람의종 2007.07.23 8588
3190 섭씨 바람의종 2007.07.23 7658
3189 성곽 바람의종 2007.07.24 6344
3188 소정 바람의종 2007.07.24 6295
3187 고장말은 일상어다 / 이태영 바람의종 2007.07.24 22391
3186 수청 바람의종 2007.07.27 8470
3185 숙맥 바람의종 2007.07.27 6540
3184 숙제 바람의종 2007.07.28 5034
3183 슬하 바람의종 2007.07.28 7009
3182 쌍벽 바람의종 2007.07.29 6253
3181 아녀자 바람의종 2007.07.29 9685
3180 아성 바람의종 2007.07.30 8537
3179 안양 바람의종 2007.07.30 7417
3178 알력 바람의종 2007.07.31 7097
3177 애로 바람의종 2007.07.31 6699
3176 야합 바람의종 2007.08.01 7517
3175 양반 바람의종 2007.08.01 7393
3174 양재기 바람의종 2007.08.02 11211
3173 어물전 바람의종 2007.08.02 7296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