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1.12.01 18:58

공적인 말하기

조회 수 1442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공적인 말하기

어떤 모임에 가보면 사회자의 첫인사가 “이렇게 많이 와 주셔서 감사하구요, 곧이어 회장님의 개회사가 있겠습니다.”라는 식으로 표현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요’라는 어미는 존대의 기능을 하는 것이고, 감사하다는 말과 개회사가 있겠다는 말이 ‘-고’라는 연결어미를 통해 이어진 것이다.

 ‘-고’라는 어미가 무척 다양한 쓰임새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이런 식의 표현은 매우 기이하다. ‘-고’로 두 홑문장을 연결하려면 그 두 서술어 사이에 일정한 의미 관계 혹은 기능 관계가 있어야 한다. 동작의 순서이든지, 수단이나 상태를 가리키든지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감사하다’와 ‘개회사가 있겠다’의 경우는 그러한 관계가 안 나타난다. 흔히 ‘반갑구요’라든지 ‘죄송하구요’와 같은 말들이 이런 현상을 이끌어낸다.

‘감사하다’나 ‘반갑다’가 이런 식으로 연결되면 그 의미가 잘 살아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감사한 마음이 잘 전달되지 않고 그다음의 말에 희석이 되어 버린다. 미루어 생각해 보건대 사사로이 감사를 표해 본 적은 있어도 여러 사람들 앞에서, 곧 ‘낯선 공중’을 향하여 ‘공적인 감사’를 표해 본 경험이 부족한 탓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사적으로는 거두절미하고 감사하다고만 해도 그리 욕될 것이 없다. 그러나 공적인 감사에는 분명한 ‘공적인 명분’을 명시해야 한다. 먼저 공적으로 왜 이런 활동이나 행위가 의미 있는 것인지를 해석해 내고 나서 그에 합당한 (감사의) 표현을 한다. 그리고 상대방의 대응을 들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 연속 행위는 완결된 공적인 언어 사용이 된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말하는 연습과 생각하는 연습을 병행하지 않은 탓이다. 국어 공부는 그렇기 때문에 교과서를 뛰어넘어 사회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1. No Image notice by 바람의종 2006/09/16 by 바람의종
    Views 54232 

    ∥…………………………………………………………………… 목록

  2.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3. No Image notice by 風磬 2006/09/09 by 風磬
    Views 215758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4. No Image 15Nov
    by 風文
    2021/11/15 by 風文
    Views 1544 

    지명의 의의

  5. No Image 12Oct
    by 風文
    2022/10/12 by 風文
    Views 1544 

    ‘~면서’, 정치와 은유(1): 전쟁

  6. No Image 25Oct
    by 風文
    2022/10/25 by 風文
    Views 1540 

    ‘시끄러워!’, 직연

  7. No Image 26Mar
    by 風文
    2024/03/26 by 風文
    Views 1540 

    온나인? 올라인?

  8. No Image 22May
    by 風文
    2020/05/22 by 風文
    Views 1539 

    말다듬기 위원회 / 불통

  9. No Image 07Jan
    by 風文
    2022/01/07 by 風文
    Views 1538 

    할 말과 못할 말

  10. No Image 18Feb
    by 風文
    2024/02/18 by 風文
    Views 1533 

    배레나룻

  11. No Image 03Aug
    by 風文
    2022/08/03 by 風文
    Views 1532 

    괄호, 소리 없는, 반격의 꿔바로우

  12. No Image 18May
    by 風文
    2022/05/18 by 風文
    Views 1530 

    콩글리시

  13. No Image 06Dec
    by 風文
    2023/12/06 by 風文
    Views 1530 

    '넓다'와 '밟다'

  14. No Image 17Feb
    by 風文
    2024/02/17 by 風文
    Views 1530 

    내 청춘에게?

  15. No Image 28May
    by 風文
    2020/05/28 by 風文
    Views 1525 

    마라톤 / 자막교정기

  16. No Image 25Apr
    by 風文
    2023/04/25 by 風文
    Views 1524 

    개양귀비

  17. No Image 17Apr
    by 風文
    2023/04/17 by 風文
    Views 1520 

    멋지다 연진아, 멋지다 루카셴코

  18. No Image 14Jul
    by 風文
    2022/07/14 by 風文
    Views 1519 

    형용모순, 언어의 퇴보

  19. No Image 03Sep
    by 風文
    2022/09/03 by 風文
    Views 1518 

    국가 사전 폐기론, 고유한 일반명사

  20. No Image 04Jun
    by 風文
    2020/06/04 by 風文
    Views 1512 

    방방곡곡 / 명량

  21. No Image 29Jul
    by 風文
    2022/07/29 by 風文
    Views 1510 

    노랗다와 달다, 없다

  22. No Image 18Oct
    by 風文
    2023/10/18 by 風文
    Views 1510 

    배운 게 도둑질 / 부정문의 논리

  23. No Image 02Jun
    by 風文
    2023/06/02 by 風文
    Views 1501 

    ‘부끄부끄’ ‘쓰담쓰담’

  24. No Image 14Sep
    by 風文
    2022/09/14 by 風文
    Views 1497 

    질문들, 정재환님께 답함

  25. No Image 18Nov
    by 風文
    2022/11/18 by 風文
    Views 1497 

    만인의 ‘씨’(2) / 하퀴벌레, 하퀴벌레…바퀴벌레만도 못한 혐오를 곱씹으며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36 137 138 139 140 141 142 143 144 145 146 147 148 149 150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