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

by 바람의종 posted Apr 20, 2008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나들이

말과 글이 같이 가는 요즘 들어서는 말인사와 글인사의 차이가 별로 없다. 사람과 경우에 따라 갖가지 인사말을 가려 쓸 수는 있겠지만, 전날처럼 “기체후 일향 만강하옵신지요? 별래무양하신지요? 옥체 만안하시온지요? …”(氣體候 一向 萬康-, 別來無恙-, 玉體 萬安-) 식으로 편지를 써야 격식을 갖춘 것으로 여기는 이는 거의 없다. 굳이 격식을 따진다면, “안녕하십니까?” 정도로 갖추어 하는 말과 “안녕하세요! 안녕! …” 식으로 줄여서 말하거나 건성으로 하는 인사 차이 정도다.

며칠 전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넘으며 국민에게 한 인사말이 “잘 다녀오겠습니다”였다. 이 말은 집이나 동네를 나설 때 어른들한테 해도 두루 통할 정다운 인사말이다. 인민이 하늘이라지만 듣는이를 높여서 하는 대통령의 이 소박한 인사를 외면하는 이가 있었을까? 남북 정상이 만나 손을 맞잡고 주고받던 말 “반갑습니다!” 역시 보통 사람의 인사말과 다를 게 없다. 그들이 초면이 아니었으면 “반갑습니다!” 다음에 “오랜만입니다” 또는 “오랜만에 뵙습니다”란 말이 덧붙었을 터이다.

지구 반대쪽도 며칠이면 다녀올 수 있고, 전화나 인터넷이면 어디서나 초를 다퉈 말글이 오가니,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울고 불며 하직인사가 길어질 일이 없어졌고, 그리움·걱정 같은 마음도 말도 거추장스러워졌다. “하루 더 묵었다 가시지요”나 “며칠 더 노시다 가시지요”도 헤어지기 전에 하던 통상적인 인사말이지만, 요즘은 좀체 듣기 어려운 곡진한 인사가 된 성싶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