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08.04.03 09:11

선과 청혼

조회 수 6480 추천 수 13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선과 청혼

청혼·혼인은 선택·모험이자 새삶을 여는 일이다. 책임이 따르면서 집안과 사회가 이를 우둔다. 조혼에다 번잡한 ‘육례’(六禮)를 찾던 시절엔 집안끼리 중신아비를 넣고서도 문서로 ‘허혼’한 일을 서로 감사하며 ‘사성’(四星)과 인사장이 오갔다. 허례허식 또는 겉치레가 아름다울 수 있는 법은, 옷과 같아서 통째로 벗어 던지면 남는 게 알몸과 다를바 없는 까닭이다.

전날 ‘선’은 사랑마당이나 울밖 먼발치에서 겉모습만 훔쳐 보는 정도였다. 임자와 어버이들이 얼굴을 맞대어 무게를 달고 허세를 부리기도 하는 게 요즘 맞선에 면접이다. 선이란 늘 보고 보이는 일이어서 설렘과 부끄러움이 함께하는데, ‘첫선’이란 말은 많은 것을 상품화한다.

그 이름이 갖가지인 만큼 중신어미(중매쟁이·중신아비·매파·여쾌·매온·뚜쟁이 …) 일은 예와 지금이 따로 없다. 디노블·앙세·듀오·커플라인 …들 낯간지러운 이름으로 선남선녀를 끌어대 성업을 이룬다니. 휴대전화·인터넷 소통이 별난데도 인연은 제대로 닿지 않는다는 얘기다.

남자가 청혼하는 말인즉 ‘같이 살자’인데, 썩 사사로운 일이어서 굳이 실체까지 들출 것은 없겠다. 하지만 사성(별넷)을 보내어 청혼하던 내림을 따른다면 그럴싸한 말이 없는 것도 아니다. “우리 별님이 되어주오. 시키기만 하면 해도 달도 따다 드리리다!” 약간의 허풍은 양념이다.

인지가 높어져선지 사주(해·달·날·때)는 타고난다고 여기는 사람도 드물어졌고, 그 흔하던 ‘팔자 타령’도 듣기 어려워졌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행복’과 가까워 보이지는 않는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40141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86714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01701
3168 드라이브 스루 風文 2023.12.05 1066
3167 콩글리시 風文 2022.05.18 1069
3166 표준말의 기강, 의미와 신뢰 風文 2022.06.30 1070
3165 ‘부끄부끄’ ‘쓰담쓰담’ 風文 2023.06.02 1070
3164 붓다 / 붇다 風文 2023.11.15 1074
3163 ‘웃기고 있네’와 ‘웃기고 자빠졌네’, ‘-도’와 나머지 風文 2022.12.06 1075
3162 할 말과 못할 말 風文 2022.01.07 1076
3161 어떤 문답 관리자 2022.01.31 1085
3160 '마징가 Z'와 'DMZ' 風文 2023.11.25 1085
3159 국민께 감사를 風文 2021.11.10 1086
3158 인쇄된 기억, 하루아침에 風文 2022.08.12 1087
3157 보편적 호칭, 번역 정본 風文 2022.05.26 1087
3156 남친과 남사친 風文 2023.02.13 1087
3155 오염된 소통 風文 2022.01.12 1088
3154 왜 벌써 절망합니까 - 4. IMF, 막고 품어라, 내 인감 좀 빌려주게 風文 2022.02.01 1089
3153 돼지껍데기 風文 2023.04.28 1090
3152 남과 북의 협력 風文 2022.04.28 1093
3151 노랗다와 달다, 없다 風文 2022.07.29 1094
3150 어떻게 토론할까, 질문 안 할 책임 風文 2022.07.24 1096
3149 질문들, 정재환님께 답함 風文 2022.09.14 1097
3148 기역 대신 ‘기윽’은 어떨까, 가르치기도 편한데 風文 2023.11.14 1099
3147 성인의 세계 風文 2022.05.10 1101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 156 Next
/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