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닥
남녘에서 최근 널리 쓰이는 말로 ‘그닥’이 있다. 그닥은〈조선말대사전〉에서 ‘그다지의 말체’로 풀이되어 있다.
“하는수 없이 박홍덕은 바위틈에서 내려서서 그닥 높지 않은 목소리로 누구냐고 소리를 질렀다.”(장편소설 1932년)
〈조선말대사전〉에는 ‘말체’로 풀이된 올림말이 상당수 있다. 말체는 곧 ‘입으로 말하는 투’다. 다시 말해 글말투로 글을 쓸 때에는 ‘그다지’로 적고, 입말투로 글을 쓴다면 ‘그닥’으로 적는다는 말이다. 남녘 사전에는 ‘그닥’이 없는데, 그 이유는 ‘말체’ 낱말을 올리지 않고 ‘준말’인 낱말을 올리기 때문이다. 만약 ‘그닥’을 ‘준말’로 풀이하여 사전에 싣는다면, ‘글말투 문장에서 일반적으로 그닥을 쓰게 되었다’고 본 것이다.
‘그닥’은 어느 낱말의 준말일까? ‘그닥’은 북부와 중부 지역어에서 두루 확인되는 ‘그닥지’의 준말이다. 이제는 ‘그닥지’를 쓰지 않는데도 ‘그닥’이 남녘의 글에서 쓰이게 된 것은 인터넷 글쓰기의 영향이다. 그래서 ‘그닥’을 인터넷 유행어 정도로 보는 사람도 있다.
‘그닥지’와 ‘그다지’는 20세기 전후에 같이 쓰이다가 표준어 정책으로 ‘그다지’로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 한글학회〈큰사전〉이래로 남북 사전에서는 ‘그닥지’를 비표준어로 보고 있다. 그런데 ‘그닥’을 설명하려면 ‘그닥지’가 다시 필요하게 되었다. ‘그다지’와의 세력 싸움에서 진 뒤로 지역어에만 남아 있던 ‘그닥지’가 ‘그닥’을 내세워 중앙 진출을 시도했다고 볼 수 있겠다.
김태훈/겨레말큰사전 자료관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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